매거진 구구절절

45. 검열

20170530_am10:40

by 강민선

쉬는 날의 첫 통화가 하필이면 관장님과의 통화라니. 쉬는 날 죄송하지만 통화 좀 할 수 있겠냐는 문자를 받고서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만 것처럼 질겁하고 말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핸드폰을 저만치 놔두고 내 볼일을 마저 보려 했지만 마치 핸드폰이 살아 꿈틀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꾸만 신경 쓰였다. 최대한 통화를 늦추고 싶었다. 내 휴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꿈틀대는 핸드폰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관장님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난 출근일에 결재를 맡긴 원고 때문이었다. 얼마전 에서 터진 횡령 사건을 소재로 는데 사실 쓰면서도 이건 쉽게 넘어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번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강제 편집을 당했지만 이건 수정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내용이었다. 밝혀서는 안 될 사건을 터뜨린 것도 아니고, 각종 포털 신문 기사에 다 실린 내용을 토대로 쓴 것이니 문제가 될까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는 최대한 포장을 하긴 했다. 좀 세게 쓴 듯한 문장을 부드럽게 고쳤고, 글의 골자가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행복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으니까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별 탈 없이 넘어가 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아닌 모양이다. 잠시 생각했다. 그만둘까. 쓰고 싶은 것 못 쓰게 하고 자꾸 바꾸라고 하는데 그냥 그만 둔다고 할까. 별 생각을 다 했다. 칼럼 연재만 그만 두는 게 아니라 그만 둘 거면 다 그만 둬야 되는데 그럼 앞으로 뭐 하지. 뭐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듯 했는데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온 지 이십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관장님은 원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내 기분도,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이해하고 말았다. 글의 골자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마음일 테니. 나는 알겠다고 했다. 다른 글이야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글. 누구도 겨냥하지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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