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43. 면역

20170526_pm10:50

by 강민선
미접종자는 자기 주변의 몸들, 질병이 돌지 못하는 몸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에 질병을 간직한 몸들에게 둘러싸인 접종자는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나 면역력이 희미해졌을 가능성에 취약하다. 우리는 제 살갗으로부터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면역에 관하여』 中 「집단면역」, 35~36쪽)

이 부분에서 지잉, 하고 울리는 순간이 있었다. 이상하게 뿌듯한 기분. 뿌듯? 내가 뭘 한 것도 아닌데 웬 뿌듯? 아니지. 내가 이 문장을 읽었지. 그러니까 내가 이 문장을 읽으려고 이 책을 펼쳤구나, 싶은 순간이 온 것이다. 내가 건강하고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게 내 덕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좋은 영향 때문이라는 말. 그게 단지 사람들의 통념이나 인지상정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은, 믿을 수밖에 없는 진실이었다. 책을 마저 읽다가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출근해서 옆에 앉은 선생님에게 책에서 읽은 내용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건강하다면 그건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는 거래요, 선생님. 선생님 눈이 동그래지면서 어쩐지, 왜 기운이 좋은 사람 옆에 같이 있으면 그 기운을 같이 받잖아요. 이용자 중에서도 뭔가 어둡고 불길한 사람이 오면 저도 막 그렇게 되는 거 같고. 맞아요, 맞아! 얘기가 어쩌다보니 이렇게 흘렀지만. 결론은 좋은 기운을 지닌 사람이 되자. 그리고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이야기하며 각자 자기 집으로 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안색이 안 좋다’는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 ‘집에 우환이 있냐’는 말도 들었다. 집에는 없다. 도서관에 있지. 물론 일하러 오는 도서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있고 그 일은 해결 돼도 문제, 안 되면 낭패인 일이어서 이러나저러나 우환이 있어 보이는 안색으로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 그런 인상을 보이는 건 역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기운이 전염될 수도 있으니. 그렇다고 속으로 꽁꽁 감싸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이 불안을 떨쳐냈으면 좋겠다. 어떤 불안에도 잠식당하지 않고 강하게 살아남는 면역력을 기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2.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