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0_am02:20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한양대병원이었다. 어제 퇴근 후 다녀왔다. 한양대 정문에 들어서자 사서교육원 때 대학도서관 견학 왔던 게 생각났고 결혼 전에 단지 집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 데이트 코스로 캠퍼스를 돌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친정이 지척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나 둘 만났다. 건너서 아는 사람, 건너 건너서 아는 사람까지 하나 둘 나타났다. 고등학교 동창끼리는 고등학교 이야기를, 중학교 동창끼리는 중학교 이야기를 나누었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끼리, 그 밖의 또 다른 멤버들끼리 둘러앉았다. 친구의 친구끼리, 친구 어머니의 친구끼리, 친구 동생의 친구끼리 그렇게 그렇게. 한 사람의 죽음이 평생가야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한 시간 한 장소에 모이게 했다. 의도하지 않은 그런 만남은 결혼식장에서도 갖게 되는데 연결고리가 되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빛나는 결혼예복을 입고 방문객들과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느냐, 아니면 검은색 장례복을 입고 화장기 없는 슬픈 얼굴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느냐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실 가장 큰 차이는 이게 아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살아 있지만, 장례식의 주인공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장례식장의 주인처럼 서서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은 유가족이지 그 곳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 자리에 주인공이 없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주인공은 사진으로만 존재한다. 나는 친구의 아버지를 만나 뵌 적이 없다. 심지어 친구의 결혼식 때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내가 그 자리에 간 것은 친구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슬픔을 예비하기 위해서이다. 매번 이렇게, 지인의 부고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요즘 사는 이야기, 하고 있는 일, 가정, 여행 계획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밤 열한 시 쯤 장례식장을 나왔다. 친구와 인사를 했고 친구의 어머니와 인사를 했다. 병원 입구까지 또 다른 친구가 배웅해주었다. 밤 열한 시까지 이야기를 해놓고도 모자라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 엄마 아빠 보면 요즘 자꾸 슬퍼.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다가 집에 와서 남편 앞에서 울어. 나의 요즘 심경을 이야기했다. 또 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 친구는 내 슬픔을 이해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칠 년 전에 돌아가셨다. 친구는 자신의 딸과 티격태격할 때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던 시간들, 거실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던 모습 등등. 슬픔은 일상 중에 툭툭 튀어나온다고 했다. 그 말이 가슴에 쿵쿵 못질처럼 다가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한양대 정문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2호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한 정거장만 가면 엄마 아빠가 사는 우리 집인데, 우리 집이었는데, 하고 내리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엄마 아빠 품으로 가 아직 살아 있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은데, 목소리 듣고 싶은데, 목 놓아서 울고도 싶은데, 그냥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