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6_20170619
20170616_pm01:28
화장실에 두 번 다녀왔다. 가서 손을 씻을 때마다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공항 화장실이니만큼 드나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행객스럽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또 다 다르기 때문에 그냥 그 모습을 보는 게 재밌는데 간혹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딴청을 부리거나 눈을 내리깐다. 아무래도 저쪽이 기분 나빠하는 것 같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어릴 때부터 자주 듣곤 했던 말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어떤 언니, 신당동 떡볶이 타운 근처에서 본 좀 노는 언니 같았던 언니는 자신을 쳐다보는 내 눈을 보며 욕을 하고 지나갔다. 나 같이 생긴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마르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은 퀭하고, 입은 심술 난 사람처럼 툭 튀어나왔고, 봉두난발에, 특별히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 옷차림. 그래, 나라도. 김포발 간사이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가까운 만큼 익숙한 행선지처럼 느껴지지만 일본은 처음이다. 서둘러 준비한 탓에 공항에서 무려 세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탑승 십오 분을 남겨두고 있다.
20170616_pm02:23
이번 여행에서 몇 자를 쓸 수 있을까 계산해보기로 했다. 이런 계획은 처음인데, 그리고 지금 막 생각해낸 건데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은 많이 할 수 있지만 과연 그 생각을 얼마나 글로 옮길 수 있는지, 얼마나 정확하게 옮길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게, 아름다운 글의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아름답게, 무엇보다 솔직하게 옮길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쓰는 것이다. 무겁지만 노트북을 가지고 다닐 생각이다. 숙소에 돌아와 회상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생각 즉시 쓰는 것이다. 아, 이러면 여행이 또 부담이 되고, 일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지는데, 누군가 억지로 시키는 업무, 월급을 받으려고 하는 일보다 내가 스스로 만들고 계획한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유로움을 마음껏, 있는 힘껏 누리고 싶고 그것을 온전히 글로 기록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
20170616_pm02:46
비행기 안. 이처럼 자유로운 글쓰기를 마구 하면서 무척이나 자유롭지 못했던 문창과 시절을 돌이켜본다. 나는 명색이 전공자였다. 하지만 명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 대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이십대 초반 대학생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탓에 학과에선 가장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생각이 깊고 읽은 책이 많고 문장을 잘 쓴다고 착각하며 보낸 시간이 전부였다. 매년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매년 똑똑 떨어졌다. 신춘문예용 글쓰기를 불평하면서도 신춘문예용 글쓰기만도 못한 결과물을 내놓기만 했다. 나도 남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을. 오, 이런. 회상하는 글쓰기는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회상하고 앉아 있네. 그것도 무려 십오 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20170616_pm04:40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면세점이 있다고 김애란은 자신의 소설 「호텔 니야 따」에서 말했지만, 그 문장에 무릎을 친 적도 있었지만, 면세점을 소 닭 보듯, 이라기엔 간혹 유심히 볼 때도 있지만 뭘 사지는 않는 나로선 그 문장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검역과 심사가 있다고. 물론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 중에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고작 이삼 일 관광하러 온 건데 왜 이렇게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지, 난 정말 떳떳하고 옮는 병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마약이나 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그런 사람 대하듯 쳐다보는 눈도 부담스럽다. 그리고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길게 서 있는 줄을 보면서 또 다시 사람 구경. 이들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영화에서 보면 꼭 이들 중에 나쁜 놈이 있단 말이지. 공항에는 귀엽게 생긴 마약탐지견도 있었다. 너무 순하고 귀엽게 생겨서 내 옆을 지나갈 때 등을 쓰다듬었다. 휙 돌아보며 너 뭐야?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봐야 어울릴 것 같은데 그냥 순하게 지나갔다. 입국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검역과 심사가 끝나면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공항에 덩그러니 남게 된다. 무수한 사람들 속에. 이제 네 갈 길 가거라, 하는 식으로 버려진다. 그것 또한 매번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느끼는 바. 이상하다. 내가 원해서 내 발로 간 여행인데 공항만 도착하면 꼭 낯선 땅에 버려진 기분이 드는 거지? JR이코카하루카를 타고 교토로 향하고 있다. 다행히 날씨는 좋다. 배가 무척 고프다.
20170617_am09:17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교토 시내를 걸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딸기우유를 사먹으면서 좀 걷다가 날이 저물고 추워져서 교토 역사 11층에 있는 돈카츠 집에 갔다. 오천 엔이 넘게 나왔다. 다시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와 과자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켜도 전부 일본 방송이어서 도로 껐다. 이 년 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땐 <스파이더 맨2> 이탈리아어 더빙 방송을 재밌게 보다가 잠들었었지. 그런 거라도 없나 돌려봤지만 없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이것이 어제 교토에 도착해서 있었던 일. 하늘이 맑아서 다행이었고 숙소가 깨끗하고 직원이 친절에서 또 다행이었다. 결국 여행지에서는 회상의 글쓰기밖에 할 수가 없겠구나 싶다. 어제의 일을 오늘 아침에서야 쓰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다시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20170617_pm01:16
교토를 걷는 내내 든 생각을 넘어 입으로 연신 내뱉은 말은 “깨끗하다!”였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가 하나도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쉬다가 우연히 차도에 떨어진 휴지 한 조각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게 다 반가울 정도였다. 어? 쓰레기 있네! 지금은 교토 츠타야 옆 스타벅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여행 중 글쓰기 계획을 해놓고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쉽지 않다.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도. 남편이 대신 들어주겠다면서 백팩을 맸는데 등과 어깨에 땀이 잔뜩이다. 한 자라도 써야 덜 미안할 것 같아서 이제야 노트북을 연 것이다. 여행지가 두고두고 생각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이곳은 마치 평소에 건너 건너 얘기를 많이 들었던 누군가를 드디어 만났는데 듣던 대로 괜찮은 인상을 받은, 그런 곳이다. 우리나라와 많은 것이 닮았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까 의심스러웠는데 대단히 이국적이었다. 교토여서일 수도 있지만 작고, 아기자기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느긋하고, 예의 바르고, 질서 있고, 조용하고 등등등의 느낌이 내가 살던 한국의 서울과 너무나도 다르기에 대단히 이국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에 이곳을 또 찾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와 비슷한 곳을 찾게 될 것 같았다.
20170618_pm11:25
어쩌면 회상의 글쓰기만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현재와 회상의 간격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아,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생각나는 그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글을 써보려는 건데, 사실 생각하는 것, 하고 싶은 말 자체가 과거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글이 회상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래도! 생각이 나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 바로 그 순간에 최대한 빠르게 옮겨보자는 것이다. 그런 글이 살아 있다. 골든타임은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문장으로 써지기 이전에 무르익는 일종의 숙성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래서 좋은 글도 있는 거고, 내가 지금 실험하고 싶은 것은 최대한 살아 있을 때, 팔딱팔딱 숨을 쉴 때 그 생각을 문장으로 길어 올려 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글을 쓸 때 내가 신이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쓸 때 신나서 쓰는 글이 읽을 때도 그렇다는 것을 이제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글은 아닐 수도 있다. 깊고 아프게 고민하고 돌에 글자를 새기듯 힘겹고 무겁게 쓴 글이 좋은 글일 수도 있다. 좋은 글, 나쁜 글을 객관적으로 구분하기엔 너무 모호하고 그래서 불가능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드는데 나 개인에 한 해 주관적으로는 대답할 수 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에게 좋은 글은, 글쓴이의 삶과 독자인 나의 삶이 고스란히, 정말 보란 듯이 느껴지는 글이다. 생각의 파도가 썰물이 되어 넘치듯 출렁이는 글이다. 내 지난 모든 시간들이 한꺼번에 소스라치듯 나를 향해 얼굴을 내밀게 하는 글이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이전의 삶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작가의 지난 모든 시간들이 역시 한꺼번에 나를 향해 얼굴을 내밀어 나 이런 사람이라고, 내 얼굴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당신에게 솔직하게 보여줘도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글이다. 그래, 바로 그런 글이다. 나도 그렇게 쓰고 싶어지게 하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노트북을 펼친 게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오고 말았다. 나오고야 말았다. 이것도 실험의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쓰다 보니 나오는 나의 생각. 이거야 말로 가장 현재형 글쓰기가 아닌가. 그래 그래, 오타는 퇴고에 맡기고 당장은 글을 써갈기시오!
20170619_pm12:43
교토 여행 사흘째. 오사카에 가기로 했다. 다음은 히라카타역 츠타야 안 스타벅스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에 남긴 글을 토대로 이어나간 글이다. 어제 노트북을 들고 나갔다가 몇 자 제대로 쓰지도 않을 거면서 무겁고 땀만 났던 것이 생각나서, 무겁고 땀이 난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지만, 그래서 더 미안해서 오늘은 노트북을 두고 가기로 하고 걷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 바로 휴대폰 메모장에 남겼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다들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 중이었고, 말하더라도 일본말로 하니까 들고 간 책을 읽는데 방해가 하나도 안 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되는 효과까지. 여기서 살긴 어렵더라도 가끔씩 이렇게 와서 책도 읽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고 메모를 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사카 시내, 그 유명하다던 도톤보리에 도착하자마자 뜨악하고 말았다. 그곳이 도톤보리라고, 오사카에 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다 가 보는 곳이라고 설명해주며 나를 그곳으로 안내한 사람은 유일한 일행이었던 남편이었다. 시내에 가자마자 서울 을지로입구가 생각나면서 어수선한 소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교토에서 백 번은 넘게 말했을 “깨끗하다” 대신 이곳에선 “더럽다”는 말을 백 번 넘게 한 것 같다. 나 원래 깨끗한 사람도 아니고, 내 깨끗함에 견주어서 더럽다는 뜻이 아니라 교토에 비해서 더럽다는 뜻이니 오해 말기를. 교토로 여행지를 정한 것은 참 잘 한 일이었다. 오사카에 와 보니 그 결정에 더욱 만족하면서 내가 사람이 없는 쪽을 더 선호하고, 나도 사람이면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운전면허 따려고 그 고생을 했으면서 차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사카에 와서 말이다. 결국에는 다 여행자들이겠지만 교토와는 질이 달라 보이는 요란스런 관광객들을 바라보다가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생각났다. 주인공 여자(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름이 ‘혜정’이었다.)는 무슨 일 때문인지 아무도 없는 곳에 가려 한다. 그래서 찾은 일본의 시골 마을 중에서도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고조시(市)를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아니 사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대충 그럴 만한 일이 있겠지 하고 넘어 갔는데 오, 막상 오사카 도톤보리라는 곳에 와보니 그 여자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막 들리고,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고 세상 떠나가라 깔깔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침에 떠나온 교토가 내 집도 아닌데 그리워지면서 어서 사람 없는 곳으로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들어버린 것이다. 만약 여행 첫 날이라면 나도 웃고 떠들진 않더라도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여행 사흘째, 그렇잖아도 교토와 비교 되게 시끄러운 오사카에 오니 모든 한국말과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졌다. 그렇다고 모든 여행자들더러 나처럼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쓸 궁리를 하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뭐 어쩌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싫을 뿐이다. 싫다. 왜 싫으냐. 반대로 좋은 것을 알라고 싫은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 구나 제대로 알고 있으라고 싫은 것이 주변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 일이다. 그러니까 싫은 것은 다 없어져야 해!가 아니라 싫은 것도 있어야 좋은 게 뭔지 알지 정도로 하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오사카에서도 좋은 것은 하나 있었으니 마지막 오사카항에서 맞이한 일몰이다. 오사카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냥 가긴 아깝고 일몰이라도 보자고 정해 놓고 남편과 나는 일몰을 기다렸다. 오후 여섯 시부터 바다와 해가 정면으로 보이는 야외 벤치에 앉아 각자 가져온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져온 책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내 가까이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 친구, 혹은 가족, 어쩌면 나 자신이기도 했다. 구구절절 모든 문장에 마치 나의 뇌관과 직통으로 연결된 신경세포가 달려 있는 것처럼 훅 와 닿았다. 노을을 동반한 석양이 바다에 그대로 반사되는 것처럼. 한 페이지를 읽고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 빛이 달라 있었다. 그리고 또 한 페이지를 읽고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 조금씩 색이 깊어져 있었다. 일몰이 언제 오나 싶었는데 시시각각, 일몰은 오고 있었다. 오늘의 끝. 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많이는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이이삼삼 모여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속삭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내 눈에 띄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다투거나 헤어지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이별하는 사람들도 있을까. 헤어지더라도 지금은 같이 있자. 잠시만 그러자. 할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은 생각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내일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선택했던 많은 순간들이 눈앞에 지나갔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누구냐 너? 할 것 같다. 십 년, 십오 년 뒤에 오사카항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고 있을 줄 몰랐을 과거의 나는, 철저하게 오늘만 살기로 작정하고 슬픔도 기쁨도 늘 최대치로 느꼈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는데, 그때의 나와 비슷한 또래인 누군가의 글 속에 있었다.
20170619_pm05:27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 수속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여행은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썼다. 줄을 선 채로 노트북을 열 수는 없었으니까. 여행 계획을 잡은 다음에는 여행 출발일을 기다리고, 출발하는 당일 차를 기다리고, 여행지에 도착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관람을 기다리고, 여행지를 순환하는 차를 기다리고, 여행이 끝나면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여행 중 제일 부러운 사람은 잔뜩 멋을 부리며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사람도, 선남선녀 커플도, 화목한 가족 구성원들도 아니다. 이제 막 여행지에 도착한 사람. 그들이 가장 부럽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활기는 저 멀리 100미터 거리에서도 느껴진다. 같은 공기여도 그들이 맡는 여행지의 공기는 확연히 다를 터다. 그들만큼이나 부러운 사람은 출국일을 하루 앞둔 사람들이다. 혹은 이제 막 티켓을 끊은 사람, 호텔을 예약한 사람, 지도를 펼치고 여행 루트를 짜는 사람들이다. 그래 나도 다시 그들이 될 수 있다. 어서 다음 여행을 생각하자. 그래야 앞으로 펼쳐질 길고 지루한 일상을 버틸 수 있을 테니. 어서 다음 휴가를 언제 잡을 수 있는지, 단 1박 2일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장소는 어디가 좋은지 궁리해봐야겠다. 이것이 간사이국제공항을 벗어나는 줄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싶지 않지만 다음 인생을 위해 어쩔 수없이 기다리며 생각하고 정리한 글이다. 지금은 집에 앉아서 이 글을 마저 쓴다. 날은 좋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에 하늘은 아직 파랗다. 교토보다 조금 더운가 싶은 정도의 날씨다. 거긴 약간 시원한 바람이 불었었지. 벌써 과거형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짧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일하면서 3박 4일의 휴가를 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자료실 선생님들의 배려가 아니라면. 한 명이 쉬면 남은 사람들이 쉬지 못하는 도서관 근무 환경이었다. 결론은 우리 서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쉬자고, 다 같이 살자고, 그런 말을 했었다. 이제 나는 현실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누군가도 쉬어야 하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돈. 그리고 일. 여행. 책. 글쓰기. 무엇이 나를 살게 할까. 달콤하지만 몸에는 해로운 음식이 있고, 입에는 쓰지만 피와 살이 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 가리지 말고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현실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른다. 모르는 채로 조금 편리해진 기분은 있다.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있다. 다시 돌아가 예전처럼 글만 쓰면서 살 수 있겠냐고 수차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자신이 없다. 어떤 이는 최대한 바닥까지 가 보겠다며 취업을 유보한 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그보다 구 년을 더 먹어버린 나는 최대한 일과 병행하며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두 배로 더 힘든 건 나일지 그일지 아무도 모른다.
20170619_pm06:20
이번 여행 동안 내 동반자 역할을 아주 톡톡하게 해준 책이 있었다. 좋은 책을 들고 가면 그 여행의 반은 성공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어느 정도냐 하면 이번 여행을 완전히 성공시켜준, 아니, 성공이란 말은 속되다. 이번 여행을 완전하게 해준 동반자였다. 손안에 쏙 들어온 문고본 판형에다 이 작가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독후산문 모음집이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발췌문 모음집이었다. 여행을 위해 다른 많은 후보 책들이 있었지만 출국 하루 전에 배송된 이 책이 운명의 책이 되었고 정말 운명적으로 아주 잘 만난 책이 되었다. 여기까지 상찬을 한 뒤에 잠시 숨을 고른다. 내가 감히 그래도 되는 책인가 싶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글로 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글을 읽고 그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 말이다. 나는 작가를 만나본 적도 없고 작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작가가 쓴 글 속의 작가뿐이니. 그냥 믿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썼을 거라고. 그것이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한 글쓰기였어도 작가는 기어이,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 일을 홀로 책상 앞에 앉아 해냈고, 그 결과물을 나는 지금 읽고 있는 거라고 믿는 것이다.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내내 들고 다녔다. 에코백에 넣어 다녀도 조금도 부담되지 않는 크기와 무게였다.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쏙 들었다. 어쩜 이 작가는 디자인도 잘 하냐 싶었다. 작가가 한 것이 맞겠지? 다른 사람이 했다면 디자인 by 누구라는 표기가 따로 있었겠지? 작가는 글을 잘 쓸 뿐만 아니라 보기 좋은 그릇에 담는 방법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한글로 써진 이 책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한 한국 작가의 한국 책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과 같아서 표지가 이상해버리면 들고서 읽기가 한국에서보다 더 부끄러워지는데 이 책의 경우는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 책 예쁘지? 하는 마음으로 일본의 사람 많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길에서 마구 마구 펼쳐들었다. 그리고 읽었다. 가장 압권은 오사카항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읽다가 몇 번을 멈췄다. 한 페이지 읽고 하늘 보고, 한 페이지 읽고 바다 보고, 근데 그게 하늘과 바다를 본 것도 있지만 글의 내용을 생각하느라 그랬다. 아, 하고 느낌표를 백 개쯤 찍고 싶었다. 그걸로는 모자라서 느낌표는 찍지 말기로 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치 평행우주처럼 작가의 인생 너머로 내 인생이 보였다고 말하면 너무 진부한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쯤에서야 책의 표지가 바닷가의 일몰 풍경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자연의 빛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대자연의 시간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글이었다. 작가는 올해로 서른 살이었다. 지금까지 도서 시리즈 세 편을 냈고 올 해 안에 세 편이 더 나올 예정이다. 별 일이 없다면. 그리고 그 전에도 낸 책들이 있다. 모두 독립적으로 출판한 제작물들이다. 일부는 어렵게 사서 읽었고 일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일부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못 읽었다. 그렇게 읽었던 글 속에서 언뜻 사귀는 사람의 이야기가 비칠 때마다 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구나 생각했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 혹은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그 일을 하기에 그만한 지지자만 있다면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작가의 이번 책을 읽고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작가가 최근에 실연을 겪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약속한 도서 시리즈를 약속한 기한 내에 발행해 냈다는 것이다. 책 후반부에는 헤어진 이후의 일상이, 상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한 일들이, 그래도 돌이킬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쩌면 이 글을 담기 위해 이 책을 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후반부에서 책의 존재감이 확연해진 느낌이었다. 그 전까지의 모든 글도 좋았지만 이후는 정말 말없음표를 끊임없이 찍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다. 그저 타국에서 만나는 일몰의 아름다운 풍광 때문일 수도 있고, 단지 내 과거가 떠올라서일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움직였던 것은 작가가 그 일을 어떻게든 견디려고 했던 모든 시간들이 그 글 속에 조금의 꾸밈도 없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간대에 내가 그 글을 읽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이별 이후에 대해서. 그 사실이 새삼 놀라웠고 정말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만약 예전에, 내가 그 작가의 나이였던 때에 읽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내가 겪은 일들을 그대로 겪고 있고, 내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을까.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그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에 경도되어 나도 일찍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을까. 왜 이제야 만났을까. 그런 생각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석양 아래 빛 물결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생에도 막과 장이 있어서 매번 커튼을 내렸다 올렸다 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커튼이 올라가면서 1년 뒤, 혹은 5년 뒤, 이렇게 시간의 흐름만 간편하게 알려주는 연극이라면 참 좋겠지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란 적도 있었지만, 1년은 365일로, 하루는 24시간으로, 시간은 60분, 1분은 60초로 촘촘하게 쪼개져 있고, 나라는 사람은 의식이 있는 한 멀뚱히 눈을 뜬 채로 그 시간을, 그 세월을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지만 사실 더 끔찍한 것은 그렇거나 저렇거나 시간은 간다는 사실이다.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좋아하게 되더라는 거다. 다른 시련이 찾아오고 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웃게 되더라는 말은 너무 노인네 같지만 이제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내가 언제나 가장 절망적으로 슬퍼할 때 가까운 누군가는 계속 이 말을 해주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을 만날 거야. 다시, 다른, 다시, 다른… 1분은 60초로 이뤄져 있다고 했지. 매 초를 이렇게 세어 보는 거다. 다시, 다른, 다시, 다른… 그렇게 매번 새로운 시간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내가 좋아해서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까지 남겼던 찰스 부코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의 문장처럼 써갈겨버리는 것이다. 어둠 속의 어릿광대가 되어, 새로 한 줄 더!
글자(공백 포함): 11,946자
낱말 : 3,052개
문단 : 40개
쪽 : 7쪽
원고지(200자 기준) : 60.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