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51. 숨다

20170626_am10:38

by 강민선

어제는 건물 입주민 회의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로비에 공지가 딱 붙어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가지 않았다. 참석하지 않은 집은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우린 회의 과정 없이 결정에 따를 생각이므로 가지 않았다. 회의는 근무 시간에 하는 것으로도 족했다. 게다가 나는 주말에 엄청나게 불어난 이용자들을 상대하고 오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남편은 불을 끄고 음소거인 상태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쉿! 올 때 누구 만났어? 아니. 사람들 소리는 들은 것 같은데 회의 장소가 건물 옥상이었으므로 다들 옥상으로 올라간 듯했다. 우린 배가 고파 몰래 짜장면과 볶음밥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용의주도한 남편은 일회용 그릇으로 주문했다. 이곳에 이사 온 지는 이제 일 년 넘었고 회의 공지는 두 번째로 보았다.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히키코모리 성향이 우리 둘에게 있는 모양이다. 대외적이고 활발할 땐 또 대충 그렇다가도 한번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면 아무도 들이고 싶지 않은 자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자들 둘이서 짜장면과 볶음밥과 탕수육 그릇을 맛있게 비워냈다. 다른 날은 조금 남기기도 했는데 어제따라 유난히 싹싹 비웠다. 우리 이럴 거면 다음부턴 단독주택 살아야겠다. 어디 바닷가나 시골 마을에서. 그런저런 얘기들. 한번은 남편과 같이 통영 민박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서점과 게스트하우스를 같이 하고 있는 곳이었다. 짐을 부리고 통영 시내를 돌고 있는데 해질 무렵 쯤 민박집 주인한테 문자가 왔다. 저녁에 손님들과 거실에서 와인을 마실 건데 같이 얘기나 나누자고. 우린 걸었던 길을 계속 돌고 돌았다. 눈에 띄는 카페도 없었고 사실 이제 숙소로 들어가 조용히 책이나 읽고 싶었는데 그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뭐라고 답하지? 둘이서 한참 고민했다. 따로 일정이 있어 밤늦게 들어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린 늦게 들어가야 했다. 우린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어디서 왔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앞으로 뭐 할 건지 같은 얘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까발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기운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만나면 대체로 상대의 기분에 맞추는 타입이라서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관계로 아주 격의 없고 편한 상대가 아니고서는 잘 만나지도 않았다. 그게 꼭 필요한 일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일로만. 근무 시간 중에만. 우린 가볍게 여행을 하러 온 것이었다. 애초에 이런 게스트하우스로 예약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늦은 후회를 하면서 우리의 대중기피성 질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같은 생각은 한다. 한 건물 살고, 옆집 사는데 얼굴도 잘 모르고 괜찮을까. 집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안 도와주면 어쩌지 같은 생각도 해본다. 아무도 우리가 이곳에 살았다는 걸 알지 못하고, 아무도 우리의 인생을 증명해주지 않으면 어쩌지 같은 생각도. 하지만 그러면 또 뭐 어떤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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