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3_20170704
20090413_pm09:08
대학도서관 출입구 앞에서 계속 망설였다. 도저히 처음 보는 대학생들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이 들면 수줍음도 줄어든다는데 난 언제쯤 그러려나. 대학원에 다니는 윤택이에게 빌린 책을 대신 반납하러 숭실대학교에 갔었다. 숭실대는 친한 친구의 모교이기도 해서 재수시절부터 내 학교만큼 자주 다녔었다. 시간이 흐른 사이 학교가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믿었던 무인도서반납대에는 ‘연체도서 반납불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해당 도서관에서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저주저하다가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저, 이 학교 학생은 아닌데요, 친구 대신 책을 반납하러 왔거든요.” 남학생은 시계를 보면서, “지금은 문 닫았을 텐데…” 도서반납대쪽으로 가며, “여기를 이용하시면…” “근데 연체도서는 반납불가라고 돼있어서요…” “아… 그럼 한 번 들어가 보시겠어요?” 남학생은 출입구에서 자기 학생증을 대신 찍어주었고, 들어가서도 방향을 못 찾고 두리번거리는 내게 말했다. “저 따라오세요.” 계단을 오르면서 내게 물었다. “학교가 어디예요?” 나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꽤 오래전에 졸업한 학교 이름을 댔다. 해당 도서관인 3층에 다다랐을 때, 역시나 문이 닫혀 있었다. 남학생이 물었다. “친구(책 주인)랑 연락이 안 돼요?” “만나기가 힘들어서요.” 남학생은 자신이 대신 반납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연체됐어요?” “연체되면 뭐 내야 하나요?” “하루에 백 원이에요.” 정확한 연체기간을 모르기 때문에 어림잡아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내밀었다. 남학생이 웃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면서 내게 물었다. “돈 남으면 어디로 연락하면 돼요?”
20170704_pm12:40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 필요해서 블로그를 뒤지다가 2009년 4월의 일기를 만났다. 블로그 일기를 열심히 썼던 2009년도. 당시 나는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단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디에도 내보이기 부끄러운 소설이지만 당시에는 꽤 거창하고 쓸모 있는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보고 책도 읽고 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책이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였고 그 책을 대학원에 다니는 윤택이에게 빌렸다. 윤택이는 시각장애인이면서 청년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 인권과 관련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먼저는 윤택이에게 인터뷰 비슷한 것을 했고 아마도 저 책은 윤택이가 추천해주었을 것이다. 청각장애인과 건청인들이 모두 수화를 사용하는 섬에 대한 이야기이자, 비장애와 장애를 다루는 사회윤리와 규범의 척도를 다수와 소수의 문제라고 말하며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린 연구서였다. 소설 속 주인공을 나중에 저 섬으로 보냈나?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배우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 무엇보다 소설의 방향을 설정하게 해준 결정적인 책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뭔가 제대로 쓴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소설과 그 소설의 뒷이야기는 좀 다르다. 소설은 어쨌든 소설로 말하기 때문에 뒷이야기가 얼마나 그럴듯하고 근사하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일기를 다시 보니 그 책을 반납하러 갔던 날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잊고 있었는데 기록해놓은 내용을 보니 하나하나 떠오른다. 4월의 봄밤이었고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세상의 절망을 짊어진 채 봄밤의 싱그러운 벚꽃천지인 대학캠퍼스를 누볐던 이상하고 모순적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남학생에게는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책과 연체료까지 맡겼으니 연락처를 주고받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었는데도 거리끼는 게 있었다. 무엇보다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가. 다음날 일기에는 대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이 무사히 반납된 것을 확인한 것과 그 남학생의 연락처를 묻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