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53. 약속

20090301_20170704

by 강민선

20090301_pm07:03

약속 시간이 지났다.

약속에 늦을 애가 아니다.

안 올 것이다.

어쩐지 내가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아주 도가 튼 사람 같다.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다 후회되면서도

막상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넌 어디서 뭘하고 있니?

어젯밤부터 먹은 두통약 네 알,

주머니에 두 알.


pm07:57

영화가 끝나간다.

엔딩 크래딧에는 내 이름만 올라가겠지.

(이 얼마나 유치하지만 정확한 표현인가)

잠깐 꿈을 꿨다고 생각하자.


pm08:13

주문한 다즐링은 다 마시고 가야지.

정말 다 잊어버린 거야?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것에 참 익숙해진 나.


pm08:27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2009년 3월 1일 카페 <테마가 있는 창>에서


P.S.

계단을 내려와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쿠폰에 도장을 두 개 찍어 주었다. 카페가 없어졌으면 어떡하지?! 4년은 적지 않은 시간이니까. 전날 미리 가서 확인하는데, 그 순간이 꿈같았고, 그때가 가장 정점이었던 거 같아. 그럼 됐지 싶어. 이젠 약속이 없어져서 어쩌나 했는데, 한 가지 좀 우스운 생각을 했어. 이제부터 매년 3월 1일 저녁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 그곳에 있어보자는 거. 나 혼자 하는 약속. 나에게 하는 약속.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에겐 그리 많은 시간이 남은 게 아니니까.


20170704_pm12:59

매년 3월 1일 저녁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 그곳에 가 있겠다는 약속은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저런 약속을 했었다는 것도 저 일기를 꺼내 본 지금에서야 알았다. 마치 다 죽은 화분에 물을 주듯 팔 년이나 지난 일기를 끄집어내서 이어 쓰고 있다. 팔 년이나 지나고 나니 저 때의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저 날의 내가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먼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자기 자신을 타인처럼 객관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건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시 내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셀로판지를 거둬낸 것처럼 사라지고 나 혼자만이 또렷이 보인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타인들은 모두 제 갈 길을 가고 없지만 나는 남아 있다. 나라는 몸과 시간을 가진 채 지금까지도 남아서 버릴 수가 없다. 나를 어떻게 버리는가. 어릴 적에 나는 새로 받은 교과서에 밑줄도 자를 대고 쳤는데 그러다 망치면 그 책을 버리고 새 책을 사는 아이였다. 그러다 몇 달 가지 않아 헌 책이 되는 건 다 똑같은데 새학기가 시작되면 그런 이상한 편집증을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공부와 점점 담을 쌓아가면서 그런 증세는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이제는 새 물건을 사면 포장부터 벗기는 미련 없이 사람이 되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제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새학기가 되거나, 새해가 되거나, 새로운 일터로 출근하거나, 새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갈림길에 접어드는 많은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과거의 나는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 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 년 전에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겠다고 혼자 약속하고 기다렸던 팔 년 전의 나도, 내가 먼저 약속을 어기고 헤어진 사람에게 끈질기게 연락해서 이 년 뒤에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냈던 십사 년 전의 나도, 먼저 좋아해서 고백해놓고 두 달 만에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십팔 년 전의 나도, 모두 나였다. 모든 게 내 중심이었다. 상처도 내가 받았고 나만 외로웠고 나만 슬펐다. 세상이 떠나가라 슬퍼했다. 보이기 위해 슬퍼했고 상대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고 슬퍼했다. 그게 나였다. 내 슬픔은 진짜였을까? 진짜라고 믿었겠지. 그렇다면 가짜였을까. 그걸 의심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너무 오래 지났는데 왜 이제와 의심하는가. 이제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할 일도 없고 감정의 노예처럼 나를 혹사시키는 일도 없을 텐데.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 줄 일도, 욕심을 낼 일도 없을 정도로 나는 늙어버렸는데.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나는 꾸준히, 그리고 드물게, 자주 혹은 가끔 그때를 생각했고 현실에서는 끝나버린 서사를 조금씩 이어가거나 재구성했다. 여러 가지 방법과 경로로 그때를 회상했다. 그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새 교과서를 깨끗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이제 사라졌지만, 학기 초에 내준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채 졸업을 해버린 기분이다.


P.S.

년 전까지는 있었던 명동의 <테마가 있던 창>은 지금은 없다.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이층으로 된 단독의 작고 예쁜 카페였는데 몇 년 전에 가보았을 땐 도너츠 체인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카페의 구체적인 생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려봤기도 했고 그때의 기억을 글로 써 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역시 기억에는 글로 쓰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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