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54. 중국

20170711_pm09:53

by 강민선

중국에 유학 중이던 H에게 메일을 보냈다. 십이 년 전의 일이라 당시 보낸 메일함은 일찍이 정리됐고 내용도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점은 이것이었다. “내가 중국에 갈 수 있겠니? 나 좀 도와주라.” 왜 중국을, 그리고 H를 떠올렸을까. 도와달라는 건 또 뭐냐. 그건 잘 한 일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판단이 서질 않지만 그땐 그 선택지뿐이었다. 어디로든 가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고 나는 외로웠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가고 싶진 않았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늦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한 해였고 소설을 쓰겠다고 직장을 구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지금 그 또래의 정상적이고 건강하며 의욕 넘치는 직장인들을 보면 간혹 놀랄 때가 있다. 나의 스물일곱은 요즘으로 치면 딱 중학생 사춘기였던 것 같다. 늘 생각만 많았지 열심히 소설을 썼던 것도 아니고 삶을 적극적으로 즐긴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칠 마음도 없었던 멍텅구리의 시간. 내 시간은 남들보다 더디게 천천히 가고 있는 것인지 서른아홉이 된 지금에서야 스물일곱 직장인의 시선으로 바깥세상의 아름다움과 중요함을 조금씩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서는 딱 한 달을 지냈다. H가 유학했던 대학교의 기숙사에서 머물렀는데 한 달을 거의 그 방에만 붙어 있어서 ‘올드보이’라는 별칭까지 붙여졌다. 밥 먹을 때만 문을 연다고. 그래서인지 방 안을 그려보라면 지금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훤하다. 일곱 평정도 되는 방에 침대와 책상, 옷장이 있었고 화장실과 욕실도 달려 있었다. 커튼이 달린 창도 있어서 자주 바깥을 내다보았던 기억도 난다. 5월의 밝고 하얗고 조금은 건조했던 날들. 지금 쓰고 있는 이 노트북이 그때도 있었다면 가지고 갔겠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두툼한 노트와 연필을 가져갔고 그것으로 글을 썼다. 머리맡에는 손바닥만 한 수첩을 두어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적었다. 그 수첩은 본가 어딘가에 아직 있을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중국에 머물면서 『밤은 노래한다』나 「뿌넝숴」 같은 작품을 남겼지만 나는 흉내만 냈지 남은 건 딱히 없다. 지금 내게 똑같은 기회가 온다면, 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그때처럼 한 달 동안 해외의 독립된 방에서 글만 쓸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앞으로 오기는 할까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 해 줄 테니 한 번 더 해보겠는가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H에게 나 좀 도와달라고 말한 것처럼(어쩌면 나 좀 살려달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왠지 그랬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내 마음은 그냥 폐허가 아니라 완전히 갈기갈기 부서진 폐허였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었다. 나는 있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있으려면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방법을 알려주는 곳도, 물어볼 곳도, 물어볼 마음도 없었다. 그 와중에 H가 생각난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그가 J의 친한 친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아마 나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너절하잖아. 단정하지 못하고. 힘들더라도 그냥 혼자 정리해. 그런 조언을 듣지도 않았을 테지만 해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떠났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어도 H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해보라. 친한 친구의 헤어진 여자친구가 유학하고 있는 타국까지 와서 나 좀 상처 받았으니 잘 봐달라고 한다. 너의 친한 친구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와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네가 대신 이 상처를 잘 보듬어주라고 한다.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내 모든 행동들은 보란 듯이 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글쓰기는 핑곗거리였다. 내숭이었다.


당시에 나는 어떤 병이 들었는데, 좀 지나면 괜찮아지는 감기 같은 거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병에 걸렸다는 사실과 일시적인 증상에 너무 크게 놀라 나자빠진 꼴로 온 시간을 보냈다. 감기야 누구나 쉽게 걸리는 것이어서 내 감기도 아니고 타인의 감기 따위 내게 옮기지만 않는다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나 감기 걸렸네, 나 죽네 하고 다닌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지금보다 백만 배는 어리석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일들을 이렇게 쓰다가도 이 글이, 이 말이 지금의 내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헷갈려져서 손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왜 쓰는 건데? 나도 모른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도 아니다. 세상에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할 수밖에 없는 일, 해야만 하는 일들 천지다. 그냥 쓴다. 쓰면 오히려 더 생각나잖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래전 헤어진 J도, H도 아니다. 나 자신이다. 이전의 글에도 언급했듯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는 남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이기도 하니까. 나라는 숙제 때문에. 이렇게 쓰면 답이 나와? 그것도 모른다. 쓰면 쓸수록 핑계와 거짓말만 늘어나는 것 아냐?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주되고 사실은 점점 멀어지고, 글을 쓰는 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결국 그런 거 아니겠어? 너를 위한 변명. 네 어리석음의 합리화. 그럴지도 모르지. 뭔가를 쓰고는 싶은데 딱히 쓸 거리가 없어서 자꾸만 네 과거를 들추는 것 아니야? 그것도 병이다 병. 그거야말로 못 고치는 병.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과거를 내가 들추겠다는데 그게 왜 어때서? 남의 과거나 남의 비밀을 들추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 자신의 경험을 팔아먹고 산다는 말, 나는 하찮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이 좋다. 그런 글을 읽을 때 더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내게 있어서 좋은 글은 그런 글이기 때문에. 나는 작가들이 남의 얘기 말고 자신의 얘기를 좀 더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이젠 시나 소설만이 최고의 문학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완전한 허구, 완벽한 창작의 세계란 없다.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가끔 어디선가 바람결에 빨래에서 풍겨 나오는 섬유유연제 향기를 맡으면 그때가 생각난다. 유학생들이 널어놓은 빨래들. 오월의 하늘. 창밖으로 내다보였던 너른 축구장. 축구하는 사람들. 자다가 꾸었던 꿈들. 바람에 나부끼던 커튼.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사실은 누군가 내 방 문에 노크하는 소리를 듣는 게 더 좋았다는 말은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외롭게 혼자 글을 쓰러 간 것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말을. 누군가 나를 불러주고 내게 말 걸어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나조차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3.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