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6_pm11:48
여행보단 요양에 가까운 부산행 KTX를 탔다. 갈 때는 비가 내리고 중부지방 쯤 와서는 폭우가 쏟아졌고 몇 군데가 침수되어가는 현장까지 목격했는데 부산에 도착해 바라본 하늘은 맑았다. 기운도 없고 허기가 져서 제일 먼저 대연역 쌍둥이 국밥집에 갔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인지 줄을 서지 않아도 되었다. 국물 한 술을 떠 마시자 살 것 같았다. 요 며칠 계속 두통에 시달렸다. 보통 하루에 몇 시간 아프다가 퇴근하면 괜찮아졌는데 이번 두통은 근무시간 중에 발병해서 집에 와서 잠들기 전까지도 심했다가 아침에 눈뜰 때만 잠깐 괜찮아지고 출근하면 다시 아프기 시작하는 무한반복이 사흘이나 갔다. 초인적인 힘으로 주말 행사를 마치고, 해놓고 갈 수 있는 일은 해두고, 미룰 수 있는 일은 미루고 집으로 왔다. 최대한 신경 쓸 일을 만들지 않고 퇴근했다고 생각했는데 복병이 있었다. 행사장 에어컨을 끄고 왔는지 켠 채로 왔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생각 안 나는 그걸 생각하느라 또 두통에 시달렸다. 한 번 생각을 시작하자 생각의 구멍에 빠져버린 것처럼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생각 속의 나는 집에 와서도 행사장 구석에 켜 놓았던 에어컨의 빨간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확신컨대 내가 끄진 않았다. 껐다면 나 대신 다른 누군가여야 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도 나였고 최종 확인을 해야 하는 책임자도 나였다. 아침마다 각 실을 순찰하며 쓰레기통을 비우는 미화 선생님한테 걸리면 어쩌지? 밤새도록 에어컨이 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전력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었다는 걸 기계실 팀장님이 알면 큰 일 날 텐데. 간밤에는 악몽도 꾸었다. 검은 불가사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내 얼굴을 덮쳐 숨도 못 쉬고 온몸이 마비된 채 꺽꺽거리다 깼다. 꿈을 꾸면서도 ‘이거 혹시 병 아닐까?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일찍 출근한 총무과 선생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에어컨 상태 확인을 부탁하고 그분으로부터 에어컨이 꺼져 있었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나의 더럽고 불길한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다행이었다. 에어컨은 꺼져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날 비난하지 않았다. 와, 언제부터 나는 이런 것을 내내 신경 쓰게 되었을까. 이러니 두통이 오고, 한 번 온 두통이 몇 날 며칠씩 가고, 속도 안 좋고, 배탈도 나고, 어지럽고, 기운 없지. 부산행 KTX를 타는 동안에도 다시 두통이 시작될 것이 두려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최소화했다. 특히 머리 부분은 더.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했다. 음식은 꼭꼭 씹어 먹었다. 두통과 체기는 헷갈리게 꼭 같이 오더라. 부산의 하늘은 맑았다. 해운대 바닷물에 맨발을 담그고 생각보다 차가워서 비명을 질러댔던 순간만큼은 다 잊고 웃었던 것 같다. 꺅-꺅- 낄낄낄낄-. 앞으로 이박삼일 동안 그렇게 보내다 갈 계획이다. 절. 대. 안.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