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56. 야행

20170717_pm09:15

by 강민선

여행 첫 날은 피곤했는지 자정이 넘어가자 금세 곯아 떨어졌다. 그 덕에 일찍 눈을 떠서 조식을 먹었다. 월요일 아침 일곱 시였고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다들 돌아가서 로비가 텅 비어 있었다. 투숙객이 없는 호텔. 추리소설에 잘 나오는 설정이다. 아무튼 한가하게 조식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배를 깔고 누워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웬 마을에 있었다. 사람들이 몇 있었고 게 중에는 친한 사람들도 있어서 같이 웃거나 이야기도 했는데 딱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없다. 어느 빈 집의 낡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같이 있던 사람이 잠깐 어디 좀 들렀다 가야겠다는 것이다. 내 또래의 여자였다. 원래부터 알던 사람은 아니었고 어쩌다가 같은 공간에 놓이게 된 그런 사람이었다. 꿈이니까 가능하겠지만 살다 보면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 나는 그녀를 따라 또 다른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건물 안으로 휙 사라졌다. 좀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웬 여자아이가 내 앞에 나타났는데 꼭 악령이 들린 것처럼(실제로 그런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는 봤으니까) 몸부림을 치는 것을 나는 아이가 꼼짝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었다. 이 아이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고 아무리 악령이 들렸어도 아이는 아이였는지 내가 더 힘이 셌다. 그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서너 명 정도 보이기에 도움을 요청할까 싶어 다가갔는데 그들도 어딘지 이상하게 변해서 제각각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나는 반대로 도망쳤다. 좀비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었지만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과 실제로 눈앞에서 직접 보고 겪는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꿈이더라도 주인공은 나야, 나! 니까.


꿈에서 깼더니 오전 열 시였다. 머리맡에는 읽던 책이 읽던 페이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이 책 때문인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장편소설 『야행(夜行)』이었다. 부산 여행을 준비하면서 역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생각하던 중 남편이 권한 책이었다. 단번에 좋다고 했다. 여름엔 뭐니뭐니 해도 추리소설이지. 게다가 책 띠지 문구에 적혀 있기를 교토가 배경이랬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교토라면 얼마 전에 생애 처음으로 다녀왔고 고작 한 번이지만 할 말이 아주 많을 정도로 푹 빠져서 다녀온 여행지이기 때문에 반갑고 친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들어본 지명이어도 ‘아, 그래그래 여기가 교토 어딘가로구나’ 혼자 끄덕끄덕 하면서, 내가 걸었던 길목들과 주변 배경들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이 사라졌다. 이 책은 사라진 한 사람을 중심으로 그녀와 모임을 함께했던 다섯 사람들이 저마다 겪은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섯 개의 관점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이 ‘실종’뿐인 이 책의 묘한 진가는 읽으면 읽을수록 더해져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실종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내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람들 모두가 사실은 다 실종 아닐까? 물론 어딘가에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세상’이라는 범주에서는 ‘실종’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근데 이 ‘나의 세상’이라는 것도 내가 눈을 뜨고 있고 내 의식이 살아 있을 때의 세상일 뿐, 내가 모르는 나의 ‘밤에 세상’(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속에서는 ‘실종’된 그들 혹은 그것이 버젓이 살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좀 오싹한 생각까지. 소설 속 이야기에 강한 동요를 느꼈다는 것은 일단 이 책이 아주 잘 쓴 책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여행과도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와도.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밀실에 갇히는 것’이라는 책 속의 문장을 몇 번이나 읊어본다. 써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두었다. 동의하기 때문일까? 단지 마음에 들어서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밀실에 갇히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지만, 여행이 일상을 벗어난 낯선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낯선 공간에서 의지할 사람이 특히 나에게는 동행인뿐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는 모두 잠시 일상에서 도망쳐 나온, 같은 차를 타고 최대한 멀리(그래봤자 부산) 빠져나온 일행이다. 물론 같은 침대에 누워 같이 잠들어도 각자의 꿈을 꾸어야 하지만, 내가 꾸는 악몽의 세계를 옆 사람은 짐작도 못할 테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옆에 같이 있다는 게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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