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4_pm01:27
비가 오는데도 굳이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불친절한 직원이 있지만 글 쓰기에는 좋은 카페로 왔는데 역시나 불친절한 직원 때문에 시작부터 기분이 상한 채 앉아 있는 중이다. 이 불친절한 직원의 불친절함을 나는 여러 차례 경험했는데 일단 목소리가 크고 얼굴이 무섭게 생겼다. 친한 사람들이랑 있을 땐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앞에선 늘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또 여길 왔는가.) 주문할 때마다 괜한 위축감을 유발시킨다. 내가 뭘 주문해야 할지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해야한다는 긴장감 같은 것. 내 돈 내고 사먹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싶은데 그런 긴장과 위축을 형성시키는 부류의 직원들이 종종 있다. 손님과 직원의 사이를 떠나 그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보았을 때 일단 목소리가 크고 얼굴이 무섭게 생긴 사람이 고지를 선점하는 경우랄까. 나는 한없이 작고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내가 목소리가 작거나 소극적인 사람은 아니다. 굳이 동네 카페에서 큰 목소리로 나를 과시하며 나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하는 포즈로 주문하고 싶지 않아서다. 누가 그렇게 하고 싶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그러고 있다. 주문하고 음료가 나오는 동안 나는 그 직원의 가슴팍에 달려 있는 이름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파트타이머 누구누구누구. 저자는 알아야 한다. 자신의 불친절함이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이 값진 휴일을 날려버리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저자는 모를 것이다. 원래 불친절한 사람은 그런 거 잘 모르니까. 나는 카페의 사장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카페에 저런 불친절한 직원이 웬 말입니까! 게다가 여긴, 보십쇼. 책을 읽거나 글을 쓰러 혼자 온 사람들이 좀 많습니까? 얼마나 예민한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러니 좀 더 섬세하고 인상도 좋고 이왕이면 여기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사람으로 바꿔 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음.
나도 친절한 편이 아니면서 불친절에 점점 민감해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들었거나, 나이가 들어 점점 좀생이가 되어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런 좀생이가 될 거면 비 오는데 굳이 글을 쓰겠다고 카페에 나올 필요도 없고, 가만히 늙어가는 게 싫어 뭐라도 해보겠다고 설치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뭐라도 되려고 애쓰는 것보다 좀생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더 중요하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 사실은 소설을 쓰려고 나왔다. 소설을 쓴 지 하도 오래 되어서, 쓰기는커녕 소설에 대해 생각해본 지도 하도 오래 되어서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