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31_pm08:16
일기나 에세이는 꼭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없던 일을 꾸며서 말할 수도 없고 내가 아닌 나를 말할 수도 없는 일. 아니, 할 수는 있다. 그럴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왠지 도리일 것 같아서. 소설이 편했던 것은 그런 도리 따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든 가상의 공간, 가상의 인물들과 그들의 행위들. 그것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또한 상관없다. 어차피 소설이라는 옷을 입고 있으니 누가 물어보면 소설일 뿐이라고 둘러댈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남편과 이런 내용으로 짧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은 에세이도 그렇다는 것이다. 에세이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반드시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에세이들도 많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렇다면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가 뭐냐고 반문했다. 남편은 그 둘을 따로 규정지을 필요 없다는 뜻이었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 분리시키려 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런 걸로 반박했을까 싶다. 무엇이든 장르를 정하고 구획을 나누려는 것은 전공자들의 폐단이리라. 중요한 건 주제, 구성, 문체, 인물, 사건, 배경이 아니라 그냥 쓰는 거지. 일단 쓰는 거. 쓸거리가 떠오르고 그것을 쓰는 것이 중요할 뿐.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못한 이유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목요일에 모 독립책방과 모 제작자가 함께하는 모 행사장에 갔었다. 모 행사는 이번이 1회인데 사전에 신청을 하고 참가비 만 원을 내면 접수 완료. 나는 접수 초반에 바로 입금을 하고 당일을 기다렸다. 기다린 이유라면 모 제작자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인데 굳이 반차까지 내고 네 시간이나 일찍 간 이유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가하게 글을 써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그 심산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오후 세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나는 네 시간 동안 노트북을 앞에 놓고 창밖을 내다봤다. 졸음이 몰려와서 한숨 엎드려 잤다. 다시 일어나 창밖을 봤다. 그래도 시간이 안 가서 책들이 전시된 카페 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녀보기도 했고 화장실에는 몇 번을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머릿속으론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시간은 많았고 장소도 괜찮았다.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그 땅은 내게 아무런 수확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죄어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반차 괜히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도서관에 있을 것을. 더 요긴한 순간에 요긴하게 사용할 것을. 하지만 이미 써버렸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니 당황스럽진 않았다. 좀 아까울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그런 대로 있어보자는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았다.
드디어 제작자를 만났다. 작가이기도 했지만 작가보단 제작자가 뭔가 더 멋있어서 그렇게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인스타그램 사진도 없어서 생김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녀가 맞을 것 같았고 실로 그랬다. 기억나는 대로 묘사해보자면 코가 높았고 눈이 깊었고 목이 길었고 팔과 허리가 가늘었다. 이렇게 말하니 윤곽으로만 표현한 것 같은데 그 윤곽만으로도 작가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작가라는 후광 때문에 모든 게 다 좋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모든 작가에게 그런 후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책을 (절판된 책들을 제외하고는) 다 읽었고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나올 책들도 읽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녀의 인생에 기꺼이 참관하고 싶기 때문에 더욱 그녀가 위대해 보였으리라. 그날 객석에는 나를 포함해 스무 명 정도 모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빈 의자가 군데군데 보였는데 행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독립책방 운영자의 독립출판에 대한 설명과 소개가 이어지자 몇 사람들은 필기를 시작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다 뭔가 제작할 기세였다. 내 손에는 달랑 사인을 받을 책 한 권 들려 있었다. 제작자로 나온 그녀의 차례가 되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는 그곳에서 올해 발표한 도서 시리즈 제작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자신의 특징과 장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작업방식을 선택해 실행해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두 달에 한 권씩 책을 낼까 싶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규모 자가 출판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대형 출판사의 일정에 맞춰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바로 매력 포인트였다. 독립출판이라는 세계에 나는 이미 발을 들여놓았지만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타인과의 조율이 없는 세상. 물론 조율이라는 것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고, 외딴섬에 홀로 살고 있지 않은 한 조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고, 그래도 기성 방식에 비해서는 모든 시작과 끝의 책임을 나 혼자 다 지어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 내 마음대로 휘갈겨 쓰는 것. 아무 이야기나 닥치는 대로. 그리고 만드는 것. 그런데, 그런데 정말 무엇을 써야 할까.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총무과장님이 넌지시 부탁이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식권 값 인상에 대한 민원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식권 값이 한 장에 3,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는데 사전 공지 때부터 인상한 지 보름째인 지금까지 도서관 홈페이지에 하루에 한 건 이상씩 민원 글이 올라오는 중이다. 갑자기 천 원이나 오른 것도 문제였지만 천 원이 오른 뒤에도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식단 때문이기도 했다. 식자재 인상, 그로 인한 지금까지의 적자운영 등등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총무과장님이 나를 부른 것은 민원글로 도배된 도서관 게시판에 칭찬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나더러 글을 잘 쓰니 식당 밥 맛있다는 글을 좀 부드럽게 써서 올리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뜨악했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줄도 시작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지난 정권이 자행했던 여론조작과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냐는 사람도 있으려나. 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타인의 아이디로 거짓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것은 ‘글을 잘 쓰니’라는 단서였다. 나를 지목한 이유. 그런 거 쓰려고 글 쓰는 거 아닌데. 그런 거 쓰려고 더 잘 쓰고 싶은 게 아닌데. 이상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냐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더 좋은 일에 쓰고 싶은데. 내 마음을 좀 더 진실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다른 누군가의 진심에 더 다가가고 싶어서 쓰려는 건데. 고작 작은 거짓말일 뿐이지만, 누구를 위해서도 선의의 거짓말이 될 수 없는 그 거짓말은 아무리 작아도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