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8_PM03:01
- 도서관이랑 잘 맞는 거 같은데 오래 해봐요.
- 도서관이랑은 맞지만 너랑은 안 맞는 거 같아.
- 월급이 다른 회사에 비하면 적긴 하지만 그만큼 널널하잖아요.
- 너나 널널하지. 니 일 다 남 시키니까.
- 여자한텐 좋은 직업 같은데.
- 그딴 말이 어딨어.
- 나중에 아기도 낳고 키우고 하려면 제 시간에 퇴근하고 일 있을 때 쉴 수 있는 게 좋잖아요.
- 근데 그게 왜 여자한테 좋은 직업이냐고 이 멍충아!
지난 새벽 두 시쯤 자다가 깨서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날이 밝으면 사직서를 낼까, 생각했던 밤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사직서를 내면? 그 다음엔? 정말 몇 푼 안 되는 월급이지만 그게 있어서 야금야금 전세금도 갚고 차 할부금도 내고 엄마 아빠 용돈도 드리고 옷도 사 입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그뿐인가? 도서관에서 일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도서관 사서가 되기를. 그래서 되었는데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고비고비 힘들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엄살 좀 피워보련다. 물리적인 업무량과 싸울 때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에 허덕일 때도 있었다. 눈물은 내가 좀 많아? 영혼이 탈탈 털린다는 말, 이제 나도 안다. 동료에게 상사에게 그리고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준 내 영혼 다 어디 갔나. 한 달 내내 일하고 받는 돈은 내가 일한 값이 아니라 그러는 동안 온데간데없이 사라질지 모를 나 자신을 지켜낸 값이 아닐까 생각하니, 정말 턱없이 모자라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자고 있는 남편의 다리를 붙잡았다. 흔들면서 울었다. 나 출근하기 싫어. 나 출근하기 싫어.
- 강선생은 어디 안 가?
- 어딜 가?
- 다른 데 안 가? 좀 가야 새로운 사람도 뽑고 젊은 아가씨랑도 같이 일하지.
- (나 진짜 너무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잊었지 뭐야. 뭐니 이 미친 발언은?) 미친놈아, 니 부인이 그런 소리 들으면 괜찮겠냐? 젊은 아가씨? 다시 말해봐. 녹음 좀 하자. 너 뒈지고 싶냐? 니 딸이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들으면 좋겠냐고 이 병신아.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말해. 다들 니 앞에서 니 눈치만 보면서 할 말 제대로 못하고 사니까 아주 니가 세상 꼭대기에 있는 줄 아는구나. 너야말로 제발 어디 좀 가라. 쫓겨나든 니 발로 나가든 눈앞에서만 사라져준다면 내가 박수 한 번 쳐 줄게. 근데 하나만 말하자. 바깥세상은 여기처럼 네 말 다 들어주지 않는단다. 밖에 나가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언젠간 나가갔지만 그전에 공부 좀 해라. 책도 좀 읽고. 내가 여기 와서 너 책 읽는 꼴을 못 봤다.
꼽아보니 입사한 지 44개월이 지났다. 44개월차 슬럼프에다가 어느 조직에나 한 명씩은 꼭 있다는 또라이를 신경 쓰느라 그만두네 마네 한 바탕 나와의 전쟁을 치른 것이다. 그만둘 때 두더라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놈한테 휘둘려 그만두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는 중이다. 사실 입장을 바꿔서 저쪽도 나를 또라이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년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은 제대로 보지 못하니까. 그리고 난 지금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래, 이제 진짜 전쟁이다. 누가 더 또라이인지,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는지 두고 보자고. 그렇다,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조용한 도서관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