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TV에서 해주는 <라라랜드>를 보다가 툭 튀어나온 말. “나도 어릴 때 대본 쓴 적 있는데.” 요즘 이런 말을 종종 한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나도 저런 적 있는데. 같은 말.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는 얘기. 영화를 보다가 그저 툭 튀어나온 한 마디지만 정말 내 머릿속에선 다른 장면이, 그 시절의 나를 담은 필름이 재생되고 있었다. “무슨 대본?” “애들이랑 연극할 대본. 애들이랑 연습해서 공연도 하고.” 라고 말하니 정말 그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였다. 함께 연습했던 애들 이름을 하나 하나 댈 수는 없어도 그때의 희미한 웃음소리, 칠판 앞에 설치한 작은 무대, 아이들,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던 내 모습 같은 것들은 떠오른다. 그저 재구성된 기억일까 봐 기억해내기 조심스럽지만 조심스럽게 인생의 또 다른 장을 펼쳐본다. 고등학교 때 나는 합창부였다. 입학하자마자 쉬는 시간마다 각 특활부서에서 반별로 찾아와 입단 홍보를 했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부서가 합창부였다. 교단에 일렬로 서더니 갑자기 화음을 넣어 합창을 시작하는데 제각각 떠들던 아이들이 일제히 조용해지면서 다같이 단원들을 넋 잃고 쳐다보던 순간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합창부 오디션을 보았고 오디션이란 게 TV 프로그램처럼 까다로운 게 아니라 그저 선생님이 피아노로 치는 음을 똑같이 내보는 게 다여서 음치가 아닌 이상 다 붙여주는 식이었다. 합창부로 지낸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시간이 생각난다. 연습했던 곡들, 화음들, 흥얼흥얼, 악보들. 힘들었던 방황의 시간도 그 안에는 어김없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생각이 안 나고 좋았던 기억만. 음악과 노래만, 화음과 합창만 기억나는 걸 보니 다행이다 싶다. <라라랜드>는 극장에서 보고 두 번째다. 다시 보니 모든 장면이 다 좋구나. 미아의 환한 미소. 커다란 눈망울. 분홍빛 노을. 세바스찬의 휘파람 소리.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 장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펼쳐지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살지 못한 선택 저편의 삶,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만약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