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68. 라라

20171008_am12:37

by 강민선

남편과 함께 TV에서 해주는 <라라랜드>를 보다가 툭 튀어나온 말. “나도 어릴 때 대본 쓴 적 있는데.” 요즘 이런 말을 종종 한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나도 저런 적 있는데. 같은 말.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는 얘기. 영화를 보다가 그저 툭 튀어나온 한 마디지만 정말 내 머릿속에선 다른 장면이, 그 시절의 나를 담은 필름이 재생되고 있었다. “무슨 대본?” “애들이랑 연극할 대본. 애들이랑 연습해서 공연도 하고.” 라고 말하니 정말 그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였다. 함께 연습했던 애들 이름을 하나 하나 댈 수는 없어도 그때의 희미한 웃음소리, 칠판 앞에 설치한 작은 무대, 아이들,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던 내 모습 같은 것들은 떠오른다. 그저 재구성된 기억일까 봐 기억해내기 조심스럽지만 조심스럽게 인생의 또 다른 장을 펼쳐본다. 고등학교 때 나는 합창부였다. 입학하자마자 쉬는 시간마다 각 특활부서에서 반별로 찾아와 입단 홍보를 했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부서가 합창부였다. 교단에 일렬로 서더니 갑자기 화음을 넣어 합창을 시작하는데 제각각 떠들던 아이들이 일제히 조용해지면서 다같이 단원들을 넋고 쳐다보던 순간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합창부 오디션을 보았고 오디션이란 게 TV 프로그램처럼 까다로운 게 아니라 그저 선생님이 피아노로 치는 음을 똑같이 내보는 게 다여서 음치가 아닌 이상 다 붙여주는 식이었다. 합창부로 지낸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시간이 생각난다. 연습했던 곡들, 화음들, 흥얼흥얼, 악보들. 힘들었던 방황의 시간도 그 안에는 어김없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생각이 안 나고 좋았던 기억만. 음악과 노래만, 화음과 합창만 기억나는 걸 보니 다행이다 싶다. <라라랜드>는 극장에서 보고 두 번째다. 다시 보니 모든 장면이 다 좋구나. 미아의 환한 미소. 커다란 눈망울. 분홍빛 노을. 세바스찬의 휘파람 소리.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 장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펼쳐지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살지 못한 선택 저편의 삶,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만약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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