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69. 맥주

20171009_am09:53

by 강민선

일요일 출근을 마치고 도서관 사람들 세 명과 저녁을 먹으며 맥주 두 잔을 마셨는데 여진이 꽤 오래간다.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도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은 즐거운 휴일이잖아. 대한민국 국민의 마지막 남은 휴일을 즐기자고. 그러려면 일단 이 마음속부터 털어놔야겠다. 어제는 그리 속 깊은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하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는데, 속을 다 들킨 사람처럼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나마 도서관에서 친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부끄러움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인 거지. 이곳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은, 어서 도서관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왜 욕하면서 남아 있는가. 그게 사회생활이고 회사생활이라지만, 난 그렇게 남아 있고 싶지 않다. 돈 때문에 남아 있고 싶지 않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내년이 되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을 더 많이 의식할 것 같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나 자신, 실수를 해서 주의를 받는 나 자신, 타인 앞에서 작아지는 나 자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감수하는 일인데, 자꾸 의식하면 나만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 말했는데, 그 말이 참 고마웠는데, 그렇다고 나 자신을 버리는가. 나는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다 좋습니다, 다 좋아요, 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는 그게 가능했다고 해도 앞으로는 어려워질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늙어갈 수는 없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난데없이 벚꽃이 보고 싶어서, 보지 못하니 그려보기라도 하자 싶어서, 노트북에 태블릿을 연결했다가 원하는 꽃잎 색깔 하나 찾아내지 못해 그냥 포기했다. 그리지 못하니 내가 원했던 게 벚꽃이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긴 시간, 좀 더 천천히 가주는 시간. 내가 생각을 다 마칠 수 있게, 결정할 수 있게 기다려줄 시간. 시간을 그릴 수는 없으니 이렇게 쓴다. 이렇게 쓴다고 시간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음에 이 글을 보았을 때, 이곳에서 내 잃어버린 시간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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