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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선 Feb 17. 2021

소한小寒

01.05.(양력), 태양 황경 285°

‘작은 추위’라는 뜻으로,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찾아오는 절기이다. 정초한파正初寒波라고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이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간 이어지는 혹한을 대비해 땔감과 먹을거리를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 두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내가 쓴 책에서 오자誤字를 발견하는 꿈을 꿨다. 평소에도 현실을 반영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초부터 이런 꿈이라니. 한 페이지가 완전히 오자로 얼룩져 있었다. 페이지를 기억해 두었다가 꿈에서 깨는 즉시 찾아보겠다고 결심했지만 일어나자마자 페이지도, 문장도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다만 꿈에서 본 그 책이 최근에 만든 『겨울특집』이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 책에는 내가 아는 오자만 이미 세 군데나 있다. 모두 책이 인쇄되어 서점에 입고된 후에 발견됐다. 이미 그 오자에 대해서라면 가슴을 열두 번도 더 쳐댔고 탄식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는데 설마 더 있다는 뜻일까! 나는 찾지 않기로 했다.


오자란 발견하기 전까지는 오자가 아니다. 이 무슨 양자역학적 발언인가 싶지만 정말 그렇지 않은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자가 오자일 리가 없지 않은가. 오자 하나를 발견한 순간 세상의 물리법칙 하나를 깨우친다. 그리곤 약간의 희망을 가져본다. 내가 발견한 이 오자를 다른 사람은 발견 못할지도 몰라. 그럼 적어도 그에겐 이 오자가 세상에 없는 거겠지. 제발!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몰랐던 오자를 독자가 먼저 발견하고 알려준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   


어떤 오자는 나중에 발견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건 또 무슨 운명론인가 싶지만 꼭 최종 파일을 인쇄소에 넘긴 다음에 발견되는 오자가 있다. 이건 무슨 수를 써서 막으려 해도 도무지 막아지지 않는 세상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인쇄된 책이 나온 직후에 발견되는 오자, 여러 달이 지난 뒤에야 무심코 펼쳐본 책에서 발견되는 오자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면서 이건 이때가 아니면 영원히 몰랐겠구나 싶어지는 거다. 그래, 이건 이 오자의 운명인 거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잘 담근 장에 구더기 같은 오자를 발견할 때마다 다음엔 한 번만 더 보자고 다짐하지만 한 번 더 본다고 해서 과연 오자가 사라질까? 어떤 오자는 안타깝게도 한 번 더 보다가 고친 부분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제논의 역설처럼 아무리 여러 번 다시 보아도 오자는 생기기 마련이고, 결국 오자 없이 완벽한 문장에는 영원히 이르지 못하는 것 아닐까.


‘완벽한 문장’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꼭 오자가 아니더라도 고치고 싶은 문장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수차례 묵독과 음독을 반복하며 퇴고를 거치는 동안에는 이보다 물 흘러가듯 부드러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문장이 어느 순간 고속도로 위에 박힌 돌덩이처럼 느껴질 때 말이다. ‘아! 조사 하나만 바꿔도 훨씬 나은 문장이 될 수 있을 텐데! 하고 싶은 말이 훨씬 잘 드러났을 텐데!’ 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조사 하나를 바꾼다고 알아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어차피 내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사람은 나일 테니까 누구보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쓰고 만든 책이라도 어처구니없는 오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거나,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하기가 참으로 겸연쩍어진다. 글을 쓰고 만드는 간이야 예술가 행세를 할 수 있겠지만, 완성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건 또 다른 정체성이 필요한 일이다. 작가의 명성만으로 알아서 팔릴 책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널리 알리는 게 출판사의 역할이거늘, 백 퍼센트의 확신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책에 흠집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이걸 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는 거다. 어딘가에 책을 소개하거나 누군가 책을 사겠다고 할 때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속사정이 다 있었다.


겸손한 마음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독서밖에 없다. 다른 책, 특히 유명 출판사에서 자신 있게 내놓는 양서를 부지런히 읽는 거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바른 표현 방법 등을 익혀 두면 적어도 몰라서 틀리는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또한 정돈된 문장을 많이 보아두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자의 번식을 막을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유명 출판사의 양서를 읽다 보면 적지 않은 곳에서 의외의, 매우 보물 같은 오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때 나는 ‘아이고,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네!’하며 매우 안타까워 하지만 약간의 희열도 느낀다. ‘오자 운명설’에 이어 ‘오자 평등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오자는 작가를 가리지 않고, 작은 출판사와 대형 출판사를 가리지 않으며, 1쇄와 3쇄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공평한 존재인 것이다. 누구나 오자를 만들 수 있다. 당신도! 그러니 용기를 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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