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39

20170112_am12:16

by 강민선


39부터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도 하고, 90이나 100도 아니고 고작 39인데 뭐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래, 시작은 39부터다.


39가 아니었다면, 올해로 내 나이가 무려 39세가 아니었다면, 나는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올해까지 포함해 나는 십 년이 넘게(십 년이 넘어가면서부터 굳이 헤아리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떨어졌다. 떨어졌다. 점수도, 등수도 모르지만 떨어졌다. 심지어 내가 낸 신문사는 투고한 원고 수도 제일 적었고, 심지어 본심 심사평도 다음과 같았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총 열 편이었다. 그 열 편의 원고를 서로 바꿔가며 읽으면서 우리는 예심위원들이 열 편 편수를 채우느라 고충이 많았으리라 짐작했다. 심사 경험에 비춰봐서 신춘문예 본심 대상이 되기에 부족한, 수준 낮은 작품이 열 편 중에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선작을 정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2017 땡땡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중에서


이렇게 성의 없는 심사평이라니!

그러면서도 제발 내 소설이 본심 열 편에 올라가지 않았기를, 누군가 실수로 버렸거나 아예 담당자에게 도착하지 말았기를 바라는 나란 인간. 내 소설이 여전히 좀 그런가, 의심하는 나란 사람. 정초부터 우울했고, 이 우울함이 지병처럼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 때문에 더 우울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가 났다. 내가 왜!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지난 시간을 허비했나, 고작 그런 일(일 년에 두어 번씩 응모기간에 맞춰 그동안 썼던 글을 다듬고, 응모 요령에 따라 표지와 봉투를 쓰고, 우체국에 가서 한 통에 2,000원이 넘는 빠른등기 우편요금을 지불해가며 내 원고를 보내는 일)을 해왔나, 그것도 십……!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마흔아홉, 쉰아홉이 되어도 늘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높이의 무언가를 올려다보며 질투와 체념을 일삼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다음 생에서도. 아아, 그럴 순 없다. 나는 더 늦기 전에 팔을 길게 뻗어 나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이제부터 시작될 39가지 컷은 아주 가볍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39에서 시작해 마침내 0이 될 때까지, 하나하나 가볍게 벗어 던질 것이다.

소설이라는 무거움, 등단이라는 집착, 투고라는 책무로부터 자유롭게.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굳이 서른아홉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쳤다. 매번 새로운 꿈을 꾸는 일도.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슬픔에 잠기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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