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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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_am12:25

by 강민선


사서함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탄생했다.


내가 사서라서. 사서함. 사서한다고.


사서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참으로 복합적인데, 그래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생존’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집 앞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전전까지도 여러가지 잡다한 아르바이트를 했거나 놀았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서른중반이 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사서함 39를 보면 된다.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만두가 아팠을 때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입원비, 치료비, 수술비가 백만 원이 나왔다. 통장에는 백만 원도 없었고, 그때부터 집 앞 카페에서 일했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시름시름 앓던 만두는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갚아야할 카드빚 같은 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나는 많이 울었다.


나의 소중한 개, 만두의 병과 죽음을 겪고 나는, 이것이 마치 어느 미래에 내가 겪어야 할 어떤 것의 예행연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중한 누군가의 병과 죽음을 대책 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때. 그때가 닥쳤을 때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인생 최초 ‘현실에 눈을 뜬’ 시점이었다.


서른넷 겨울에 사서교육원 면접을 보았다. 서른다섯 봄부터 다니던 카페의 근무 시간을 오픈 타임으로 바꾸고 저녁 시간에는 수업을 들었다. 이듬해 1월 사서가 되었다.


요약하자니 쉬워 보이지만 그 사이 힘든 순간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보아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살아온 터무니없이 기나긴 나날들이 무색해지리만큼 짧은 성취였다. 운도 따라준 것 같다. 되는 게임은 따로 있나 보다.


사서가 된 지 삼 년이 넘어간다. 요약하자면 쉽지만 그 사이 힘든 순간도 많았다. 모든 요약이 그렇겠지만. 사서가 되는 것이 내가 얻은 짧은 성취였다면, 사서로 남는 것은 또 다른 관문이었다. 조직과 헤게모니, 참으로 전형적인 인물들, 공감의 뒷담화, 규격화된 사건과 사연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있는 건 있다. 현실에는 눈이 떠져 있고, 통장에는 최소한 백만 원은 넘게 있고, 가까운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돈봉투 정도는 고민 없이 낼 수 있고, 빚도 있고, 그러나 갚으면 된다는 넉넉한 마음도 있고, 마음이 있는 한 언제든 여행갈 수 있고, 나이도 있고, 또 있고, 또 있고.


확실히 과거보다 있는 것은 많은데, 있는 것이란 게 원래 있던 게 아니어서, 그 자리만큼 사라진 원래의 것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내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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