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37

20170115_am11:08

by 강민선


결혼식을 도서관에서 했다. 커다란 서가를 배경으로 한 웨딩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이국의 흑백사진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그것이 가능한지 검색해봤더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예식장 대관을 해준다는 기사가 나왔다. 가능한 일이었다.


사서교육원 시절의 가을, 그러니까 아직 사서가 된 것도 아니었고 사서가 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던 때에 나는 국립중앙도서관 총무과 모 주무관을 만나 8개월 뒤에 있을 결혼식 대관을 예약했다. 8개월 뒤에 결혼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가운데.


그날의 기억을 거의 고스란히 담은 소설이 있다. 신춘문예용은 아니었다. 힘을 빼고 그저 그날의 흐름대로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결말인데 거긴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억지로 결말을 내야만 할 때 글이 재미없어진다. 언제쯤 나는 아름다운 끝맺음을 할 수 있을까.


그 소설에는 내가 만난 국립중앙도서관 총무과 모 주무관도 나온다. 처음 만난 날의 인상을 기억해두었다가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옮겼다. 거의 그대로. 사서가 된 이후에 교육차 이따금 그곳에 가는데 그때마다 생각난다. 한번 소설로 옮겨본 기억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은 카페 알바생이었을 때도 썼고 서점 캐셔였을 때도 썼다. 학생이었을 때도 썼고 백수였을 때도 썼다. 내가 쓴 소설을 보면 그 시절에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는 글을 쓰는 것을 나의 주된 정체성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여겼을까.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소홀히 한 건지, 아니면 내가 가진 것 중에 그것만이 가장 좋고 내세울 것이라 그랬던 건지. 돌이켜 보면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어떤 변화가 찾아오거나, 무료하고 권태롭거나 늘 이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그래, 이걸 쓰자.


사서가 된 이후 내 글의 주 공간은 당연히 도서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서도 나온다. 도서관이라는 근무지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쓴다. 보고서나 보도자료가 아닌 소설이기 때문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쓰고 있으면 사실과 허구를 가릴 필요도 못 느낀다. 몸은 자료실 데스크에 앉아 있지만 상상은 시공간을 떠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신체와 생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사이좋고 건강한 상태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순환도로가 꽉 막히거나 교통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유로워지려면 통제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좋아서 하는 일이 가장 나중으로 배정된다. 다른 하기 싫은 일들을 먼저 하다 보면 에너지는 소진되고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39에서 시작해 0이 될 때까지 써보자 마음먹었으나 37부터 막혀 버리다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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