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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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_pm10:38

by 강민선


눈이 많이 왔다. 일찍 잠들어 눈이 내리는 것도 몰랐고 아침에 출근하러 나가서야 차 위에 한가득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속수무책으로 쌓여 있는 눈을 보고 있자니 지난 가을에 사둔 자동차 앞유리창 설빙 방지용 비닐 덮개가 생각났다. 이럴 수가. 눈이 온다는 사실은 예보로 알고 있었건만. 그것만 뒤집어 씌웠어도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출근길이었으므로 나는 내 차에 내린 눈사태를 그저 바라만 보다 가버렸다. 시간이 있다면 눈을 조금이라도 치울 텐데. 하지만 없었다. 시간이 있다면, 눈을 좀 치우고 추위와 바람을 약간이나마 막아줄 건물 안쪽 주차장으로 옮길 텐데. 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출근하는 대로 눈쓸기에 동참해주세요~~^^

지하철 안에서 총무과장님이 보낸 단체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무려 사십 명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었다. 대답 없이 창을 닫았다. 내 차를 덮은 눈도 못 치우고 출근한다구요. 도서관에 이르는 걸음은 평소보다 더 느렸고,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다른 직원들이 눈을 다 쓸어 놓은 뒤였다.


차는 작년 여름에 샀다. 봄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운전면허시험을 여름에 합격했다. 운전면허학원까지 가는 도로 변에는 가로수가 길게 심어있었는데, 가로수에 벚꽃이 필 때부터 질 때까지, 그 자리에 초록색 벚잎이 무성해질 때까지, 긴팔 카디건에서 반팔 티로 옷차림이 바뀔 때까지, 나는 그 학원을 다녔다. 어떻게 한 계절이 지나는 동안 같은 코스를 돌며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 있을까 싶지만, 내가 그랬다. 힘들게 딴 면허증인 만큼 바로 산 차다. 내 차. 나를 자유롭게 해줄.


한번이라도 자유로운 적이 있던가.


퇴근하자마자 고무장갑 낀 손으로 차에 쌓인 눈을 휘휘 치웠다. 유리창을 덮은 눈은 그새 얼어서 깨끗하게 쓸리지도 않았다. 쓸리는 눈만이라도 떨어내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눈을 쓸어내렸다. 앞유리창의 절반도 못 갔는데 더 이상 손이 닿지 않았다. 반대편으로 가서 또 열심히 했다. 가운데는 여전히 닿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벗고 집에 들어가 청소용 밀대를 가지고 왔다. 진작에 이것을 쓸 걸. 하지만 제설은 완전하지 못했다. 이미 어두웠지만 밤이 되면 기온은 더욱 떨어질 것이고 이 눈은 영원히 녹지 않겠지.


다시 올라가서 차 키를 가지고 왔다.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온도를 높였다. 이렇게 녹이면 되지 않을까. 천천히 후진을 하면서 비어 있는 내부 주차장으로 옮기려고 시도해보았다. 어두워서 그만뒀다. 나는 초보였으므로. 주차돼 있는 다른 차들을 박기라도 하면. 차라리 눈 쌓인 채로 둘 걸, 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제자리로 돌아온 차. 밖으로 나와 차 주위를 뱅뱅 돌며 밀대로 조금 더 밀어보고, 와이퍼 사이에 낀 눈을 맨손으로 치워보아도 제설은 요원한 듯했다. 손이 시렸고 추웠고 배고팠다. 집에 가자.

다시, 설빙 방지용 비닐 덮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눈이 깨끗하게 닦이진 않았지만 그냥 두는 것보다 한 겹이라도 덮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덮어줬다. 눈을 치울 때와 마찬가지로 차 주변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비닐을 펼치고 자리를 잡고 문 사이에 끼워서 고정시켰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몰랐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고무장갑으로, 밀대로, 맨손으로, 눈을 쓸고, 밀고, 치우고, 덮개까지 덮어줬더니 내 차가 꼭 사람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가려는데 눈 쌓인 한 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내 차가 자꾸 눈에 밟혔다.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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