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9_am02:07
책을 반납하다가 어떤 제목을 발견했다.
영원한 주변?
다시 보니 『영원한 주번』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이가 없네?
다시 보니 『없네 없네 아가 없네』였던.
잘못 읽어버린 제목 때문에 한 번 더 눈이 가는 책들이 있다. 잘못 읽은 단어 때문에 엉뚱한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알 수 없는 사고의 갈래들. 어린이 동화 『영원한 주번』은 제목을 잘못 읽은 탓에 ‘영원한 주변’이라는 다소 철학적이며 의미심장한 책으로 둔갑할 수 있었고, 그렇게 잘못 읽은 덕분에 나는 ‘영원한 주변’이라는 낯설고도 묵직한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주변. 나는 왜 이 단어에 끌렸을까. 사람마다 고유한 정서가 있는데, 나의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를 내가 고를 수 있다면 아마도. 영원한 주변. 그래서 내 눈에 들어온 걸까.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났을 때 신기한 듯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왜 ‘주변’인가. 사람은 저마다 제 인생의 주인공이고 자기 삶의 중심이라는데 나는 왜 ‘주변’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중심이 있는데, 그곳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그것에 시선을 뺏긴 채 관찰만 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하는 중심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무래도 잠을 못 이룰 것 같아서 그만두련다. 좀 어려운 이야기다. 정말로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겠지.
그래서 나는 주변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중심에 설 자신도 없지만, 나는 그저 관찰하는 사람이 좋고 편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 순수하게 중심이 되고 싶은 사람. 주변도 아는 사람.
그렇다면 ‘영원한 주변’에 가려진 원래의 제목 『영원한 주번』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찾아보았다. 주번이 되고 싶은 아이 욱이. 주번이 되어 학교 아이들에게 호령하고 싶은 욱이는 시장에서 파는 주번 명찰을 사서 가슴에 달면 영원한 주번이 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돈으로 명찰을 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