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3_pm01:50
수요미식회 제주도 편을 두 번째로 보고 있다. 제목에 대놓고 ‘수요’라고 써 있는데도 언제 하는지 몰라 매회 챙겨보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채널을 고정하면 넋을 잃고 본다. 특히 제주도 편은 두 번째인데도 새롭고 경이롭다. 지난 방송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소개된 가게가 다 나온다. 메모하면서 본다. 제주도행 비행기편을 알아본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저 프로는 오래 갈 것이다.
처음 볼 때는 미처 몰랐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평대리의 평대스낵 바로 옆 카페인데 누군가 살고 있는 개인 집처럼 생긴 카페여서 방송에는 그저 ‘카페 같지 않은 카페’라고만 소개된 곳이었다.
카메라가 카페의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면 에디트 피아프의 라 비 앙 로즈가 흐르는 두 개의 커다란 진공관 스피커가 보이고, 그 옆 방으로 가면 책들이 놓여 있는 서재와 테이블이 보인다. 소개 멘트와 함께 카메라가 다시 좌식 테이블을 비추면 그 위에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놓여 있다. 계속 이어지는 내레이션. 원래는 월정리 바닷가에 있던 카페였는데 그곳이 갑자기 다른 카페들로 번잡스러워지자 한적한 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카페가 있었다. 아일랜드 조르바. 내 머릿속을 그대로 비춰준 듯 화면에는 예전 월정리 그 자리에 있던 카페의 모습이 잠시 스쳤다. 낮은 담벼락 중간에 사각으로 뚫린 창으로 보이는 월정리 파란 바다.
월정리는 7년여 전 그곳에 다녀 온 친구 때문에 알게 된 곳이다. 서른 무렵에 등단한 그녀는 여행 겸 소설을 쓰기 위해 제주도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7개월이나 머물게 되었다. 그녀가 머문 곳이 월정리였다. 인적 드문 바닷가 바로 앞 작은 카페 이야기도 그녀에게서 처음 들었는데 당시만 해도 바닷가 앞에 카페가 있다는 게 외국 영화 속 풍경만 같아서 신기하게 들렸다. 게다가 이름도 ‘아일랜드 조르바’라니.
장기 투숙객이었던 그녀는 나중에는 민박집에 온 손님들에게 방도 안내해주고, 그곳 지리도 알려주고, 마을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에 대표로 나가 우승도 했다. (그녀는 체대 출신 소설가다.) 하지만 대단한 능력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머무는 민박집에 새로운 여행객이 들어오는 본새만 보아도 무슨 일로 왔는지, 며칠을 묵을 건지, 휴가를 내고 왔는지 아예 회사를 때려 치고 왔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했다. 놀라웠지만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그녀가 사람들을 관찰하며 터득한 일리 있는 기술이었다. 나는 그녀가 해주는 제주도 이야기가 재밌었다. 소설을 쓰러 간 그녀였지만 그녀 자신의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고,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그런 삶을 택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을 위해 다른 것을 다 버릴 수 있을까. 나이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기꺼이 모험을 떠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일정한 수입을 만들고, 가정을 꾸리고, 일상에 스스로 매몰되는 것을 용납하며 사는 걸까. 그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그 삶을 거부할까. 그건 사람마다의 본성인 걸까. 생활환경 때문일까. 가치관일까.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적당한 때에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쓰고 다시 돌아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삶.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적당히 타협한 결과다. 도서관 사서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알맞은 자리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납득하기 힘든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건 세상 어느 일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대체적으로 견딜 만하다. 공공기관에 기생하는 부조리함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절대적인 아우라를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매일 써내야 하는 업무일지와 기안, 결과보고서, 각종 통계자료, 증빙자료 등등의 것들을 한 데 모으면 백과사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두께가 나온다. 모든 결재 서류는 5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작성자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지만 그것들은 내 책이 될 수 없었다. 하루에 한 장이라도 기어이 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그것이다. 한 쪽을 과감히 버리지 못했으니 양 쪽 다 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과 여행, 업무일지와 사서함. 가능하면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