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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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_am01:06

by 강민선


연희동 방문기


첫 번째 방문


6년쯤 전 소설가 친구(사서함 29에서 소개하기도 했다.)가 머물던 연희문학창작촌에 방문했다. 그곳은 등단 작가에 한해서 일정 기간 동안 저렴한 값에 작업 공간을 빌려주고 있었다. 가을이었는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의 설명에 따라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초행길을 맞이하는 겸손한 태도로 버스 안내방송을 주의 깊게 듣고 정확하게 내리자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역까지 마중 나온 그녀를 따라 한적한 길가를 걷다가 창작촌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야트막한 동산이 바라다보이는 단층 건물 앞에 섰다. 또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와 거실이 보였고 동산 쪽으로 창이 난 곳이 그녀의 방이었다. 침대, 책상, 책장, 밥솥, 화장실, 와인병, 노트북. 내가 기억하는 것들. 그녀는 밥솥에서 흰 쌀밥을 퍼주었다. 마당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고추라며 그것도 씻어 주었다. 쌈장에 찍어 밥이랑 먹었다. 또 뭐가 있었더라. 차린 반찬이 다 맛있었다. 오래전 일인데 그날 그녀가 차려준 밥상이 정말 맛있고 고맙게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 나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두 번째 방문


2015년 9월, 김영하 작가가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페북을 통해서였다. 페북은 또 다른 소식도 알려주었는데, 그의 집 바로 앞, 개나리언덕이라고 부르는 마을 숲이 빌라 건설 계획으로 송두리째 파헤쳐졌다는 내용이었다. 풀색이라곤 하나도 없는 황폐한 절벽, 주황색 포클레인 한 대가 찍힌 사진 한 장과 함께. 수십 년간 개발이 불가능했던 생태환경지구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목도한 작가는 ‘개나리언덕살리기주민협의회’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을 분석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저는 앞으로 여기 개나리언덕 난개발 현장 바로 앞에 있는 저희 집 마당에 앉아 찾아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와서 억울하고 답답한 사정을 말씀하시면 저는 묵묵히 듣겠습니다. 저는 정치인도, 공무원도 아니니 어떤 문제도 해결해드리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들어드릴 수는 있습니다. 얘기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지나가셔도 됩니다. 다만 한 아름다운 숲과 언덕이 어떻게 이토록 무지막지하게 파괴되고 있는지 한 번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하 소설가


이럴 수가.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신혼집이었던 연신내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은평구를 지나 ‘어서오십시오. 서대문구’라는 표지판을 만나자 가슴이 뛰었다. 15분만에 도착했다. 언덕 위에 있어서인지 구글 지도가 없었다면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다. 가는 동안 곳곳에 지역 주민들의 함성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장을 걷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작가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공기가 달랐다. 나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섞여 사위를 둘러보았다. 사진으로 본 모습 그대로여서 놀라웠고, 그곳에 정말 내가 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마지막엔 사람들과 단체 사진도 찍었다. 허허벌판 공사장을 배경으로. 웃지도 않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그 후로도 가끔씩 개나리언덕 소식을 듣기 위해 뉴스를 검색해보곤 했다. 가장 마지막에 접한 소식은 꽤 반가웠다. 개발이 취소되고 다시 원래의 숲으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잘 된 일이지만 이 일이 이렇게 뒤집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판을 바꾸기까지 많은 수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안 될 줄 알았다. 잘 있던 숲을 그 지경으로 망쳐버린 데에는 확고부동한 목적이 작용했을 것이고, 이런 쪽으로는 언제나 나쁜 편이 이겼던 것 같아서.


원래 있던 나무들, 수십 년 간 이어져왔을 오솔길과 작디작은 풀꽃들은 이제 없다. 특히 작가의 집 앞에서 뿌리째 뽑혀 나간 살구나무가 많이 아쉽다. 풍성했을 그 열매들. 모쪼록 이들을 대신해서 그곳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나무와 풀들, 꽃과 생명들이 어서 자라나주길 바랄 뿐이다. 다음에 꼭 보러 가야지.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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