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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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_pm03:47

by 강민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다 스물여덟 살에 기독교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잠깐 일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때 생긴 첫 명함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버렸을 것이다.


당시에 처음 만든 책을 아빠에게 보여줬을 때 아빠는 책 이곳저곳을 뒤적이더니 내 이름이 어디 있냐고 물으셨다. 그곳 방침이 판권에 편집자 이름을 넣지 않는 거였다. 아빠는 별 반응이 없었다. 네가 쓴 책을 만들려면 돈이 얼마나 드니? 아빠의 질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책을 돈 받고 만들어야지 돈을 왜 내? 나는 아빠에게 등단제도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공모전 같은 데에 내서 당선이 되면 상금도 받고 출판사에서 책도 만들어주고 어쩌고저쩌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착실하게 믿고 있던 때였다. 얼마전까지도 그랬지만.


자신의 돈을 들여 소규모로 출판을 하고, 직접 발로 뛰며 제본을 하고, 유통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다음 책을 내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결국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삶. 나는 내 글에 자신이 없었던 걸까. 그래서 반드시 어떤 권위의 인정이 필요했던 걸까. 그러기 전까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동안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열심히 쓰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이른 나이에 한 권, 두 권, 자신만의 책을 완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지금까지 그들의 열정과 정성을 단지 ‘권위 없음’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 후회와 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찾아 대형서점이 아니라, 기성 출판사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서점, 처음 보는 판형의 책들, 기발한 아이디어, 그 책을 만는 작가의 단단하고 애정 어린 속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고.

그때 그 출판사는 금세 박차고 나왔다. 편집자가 총 두 명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사장의 부인이었다.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기억들이 있지만 이곳에 쓰진 않겠다. 여하튼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는 다신 안 가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어딘가에 금세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다. 들어간 건 돈 때문이고 나오는 건 꿈 때문인 이상한 순환고리. 순환착각고리. 서른여섯에 적당한 타협점인 도서관에 들어온 지 삼 년. 위태롭고 무사한 삼 년이다. 쉬는 시간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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