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건강검진 대상자이다. 2년은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지. 아직 1월이고 12월까지는 꽤 넉넉히 남아있지만 아마도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기한이 임박해서야 서둘러 건강검진 해당 병원을 검색하겠지.
건강검진이 번거로운 것은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는 만 20세 이상 여성으로 앞당겨졌지만 나에게 처음으로 자궁경부암 검진표가 날아온 것은 만 30세였던 2009년으로 삼십대의 충격적인 서막을 알린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 해에는 검진을 받지 않고 건너뛰었다. 두 번째 검진표가 날아온 2011년에도 용감하게(?) 건너뛰었다. 2013년에 세 번째 검진표를 받고서야 처음으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모양이다. 만 34세. 혼자서 집 근처 산부인과를 알아보고, 주변 사람에게 자문도 구한 끝에 처음으로 받았던 자궁경부암 검사는 상상 이상으로 아주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의자에 누워 있다시피 하다 나왔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는데 2년 뒤에 같은 병원에서 또 받았다. 2년은 정말 빨리 돌아왔다. 만 38세인 올해에도 나는 그 끔찍한 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 어쩌면 처음이나 두 번째 보다야 수월할지 모르지만…… 그냥, 그러길 바라야지.
만 38세.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병원이라고 하면 무서워서 울며불며 매달리고 싶은 어린애 마음이다. 이를 어쩐다. 만 40세가 넘으면 자궁경부암에 유방암, 위암, 간암 검진까지 받아야 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받아야 하는 검진 숫자도 늘고, 검진 방법도 더 까다로워질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내 성장과 노화 속도에 비해 시곗바늘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니 물리적인 시간만 서른이고 마흔일 뿐 몸과 마음은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아무 이상 없다고 믿고 싶은데.
윤대녕 작가가 한 중년 남자의 건강검진을 소재로 쓴 단편소설이 있다. 제목을 소름끼치게도 잘 지었는데 바로 「검역」이다. 검진을 받는 동안 당사자는 사람이기보다 병원체를 지니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몸뚱이일 뿐이라는 점에서 검역이라는 말은 적격이다. 검사 항목에 따라 실제로 잠을 재우거나 마취를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의식은 검진 과정에 아무 필요가 없다. 내 몸에서 의식을 분리해 다른 사람의 손이나 기계에 의해 그것이 만져지고 뒤집어지고 꺼내지고 다시 닫히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하는 시간. 그게 건강검진이었다.
살면서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서 내가 받아본 가장 큰 검사가 자궁경부암 검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받아야할 것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삶의 의욕이 사라진다. 이상한 일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하는 검사들인데 의식은 더 약해지다니. 위에 나열한 검사에 대장암 검사까지 포함에서 꼬박꼬박 받고 있는 부모님은 어떨까. 똑같이 무섭고 슬프고 그럴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