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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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0_pm06:54

by 강민선


독립출판물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 서른 무렵의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마도 그래서 더 애잔한 마음이 드는가 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근처 카페에서 그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하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 곳에는 불안을 지닌 채로 방황했던 때.


서른하나의 나는 매일 아침 여덟 시면 15인치 노트북을 들고 집에서 나와 당시 집이었던 동대문에서 걸어서 대학로로 갔다. 아침부터 문을 여는 카페는 스타벅스뿐이었고 하루 종일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고민 없이 그곳에 갔다. 그리고 저녁 여섯 시까지 앉아 있었다.


그렇다. 집에서는 출근하는 줄 알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여덟 시에 나와 저녁 일곱 시면 집에 왔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활은 한 달을 넘지 못했지만 내 지난 인생 중에서 기억할 만한 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치 이 세상에 혼자 살아가는 것 같은 외로움과 자유를 동시에 느꼈던 시간이었다.


대학로 스타벅스는 내 일터였다.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따금 인터넷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고 한가로이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정직하게 지켰다. 돌아다니기에는 무더운 한여름이었고 15인치 노트북은 지금 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웠다. 한번 자리를 떴다가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돈이 또 들기 때문에 퇴근 시간까지 버틴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무서운 나였다.


나름 직장인답게 근처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기도 했다.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를 읊기도 했다. 같은 학교 한 학번 선배이지만 나이는 세 살이 어린 그녀는 내가 쓴 글을 읽고 평가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우리는 둘 다 이름에 ‘선’자가 들어가는데 나는 ‘먼저 선(先)’이라 이기적인 반면, 그녀는 ‘베풀 선(宣)’이라 늘 맛있고 좋은 것을 사주었다.


또 다른 친구는 나를 만나러 그곳에 오기도 했다. 소설가로 이미 등단한 그녀도 나처럼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전전했는데 등단 작가가 직업으로 그러는 것과 나 같은 사람이 일없이 그러는 것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내가 지치고 무기력한 기색을 보이면 그녀는 말했다. 등단한다고 바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등단했는데 잘 쓰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창피한 게 없으니 등단하기 전에 많이 써두는 게 좋다고.


도저히 앉아만 있기 힘든 날이나 더 이상 아무것도 써지지 않을 때에는 한낮의 무더위에 15인치 노트북을 들고서라도 돌아다녔다. 대학로에서 안국까지 걸었다. 정독도서관에 들러 땀을 식히고, 다시 광화문까지 걸었다. 교보문고 한국소설 코너를 구경하다 시간이 되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그러기를 한 달. 심정적으로는 노숙자와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아리송한 것은 그때가 내가 원해서 선택한 시간인지, 무언가에 떠밀려 나도 모르게 빠져버린 시간인지 나도 헷갈린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지만 해방감보다는 막막함과 서글픔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 시간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이었던 걸까. 그 시간이 내게 준 결과물을 나는 언제쯤 확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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