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9_pm11:01
언제까지 공짜 밥을 먹을 거야?
설 명절, 시댁 식구들과 다 같이 모여 밥 먹는 와중에 아무 맥락 없이 무턱대고 던져진 시할머니의 질문을 나는 단박에 이해했다. 예상 질문인 것은 분명했고 몇 개의 답안도 생각해 두었는데 ‘공짜 밥’이라는 뜻밖의 형태에 기분이 먼저 상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다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 아침부터 와서 전도 부치고 만두도 빚었는데. 내가 빚은 만두만 안 터지고 성공했는데. 다 먹고 나면 설거지도 내 차진데. 공짜 밥이라니.
순간 표정 관리도 안 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나를 대신해 남편은 ‘지금 준비 중’이라고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말했다. 분위기를 좋게 넘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항상 하시는 말씀일 뿐이니 굳이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걸 남편은 나보다 잘 하는 편이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절하지 않을 뿐이다. 모든 간절한 것들이 그만한 이유가 있듯 간절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 갚아야 할 전셋값도 있고 양가 부모님들도 넉넉한 편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면서 양쪽 부모님의 살림도 걱정해야 하는 긴 시기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앞선 걱정이고 불안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일정 기간 동안 성장시킬 것을 계획하면서 그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부부는 지금보다 더 진급을 하겠다거나 연봉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언제 그만두나, 언제쯤 진짜 원하는 삶을 살까 날마다 궁리 중이다. 그 와중에 아이는 뜻하지 않은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자라면서 아빠와 유독 자주 부딪쳤다. 둘의 폭력성이 부딪쳤고, 상대를 향한 혐오감이 부딪쳤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폭력성과 혐오감의 대상이 될지 모를 자식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 마냥 희망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나 앞선 걱정과 불안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런 내 마음상태를 들여다보기는커녕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짜 밥’을 먹고 있다는 핀잔을 아무렇게나 주고, 또 웃으면서 좋게 넘어가려는 분위기가 싫었다. 나 역시 어색하지 않게 넘어가기 위해 억지로 웃었고, ‘이런 소리 듣는다고 기분 나빠할 일 아니다’, ‘이런 말 해주는 어른이 있는 거 고마워해야 한다’ 등등의 일장연설도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고 있었으니 그놈의 ‘분위기’만 살피는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는 사이 화는 더 깊어지고,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겠지.
어쩌면 나는 세상과 화합할 수 없는 본성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가족에 대한 애정도 없었고 집에 있기도 싫어했다. 타인에게 정을 느낄 땐 나를 감추거나 과장했다.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밝아진 편이지만 사교성은 여전히 떨어진다. 내가 갖고 있는 어두운 성향들이 아이에게도 유전되고 외로운 인생 하나를 또 만들게 될까봐 걱정 된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공짜 밥’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너무했다.
내가 거지야? 애 안 낳으면 거지야?
이곳에만 한 소리 날카롭게 던지고 싶다.
그래, 나 거지다! 애랑 같이 셋이서 거지 되느니 둘만 거지인 채로 잘 살고 싶다.
아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