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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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2_am01:14

by 강민선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디아워The Hours>에 대한 기억.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중심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시점과 훗날 그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의 시점, 그리고 더 한참 뒤 그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아가고 있는 편집자의 시점을 교차로 보여주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 영화를 보자마자 마이클 버닝햄의 원작소설과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모두 사서 읽었다. 십 년도 훨씬 이라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강렬한 서사보다는 인상적인 몇 개의 장면, 몇 개의 문장이 있는 그런 책이었으니까.


오늘 배송된 책 속에 내가 일하는 도서관이 등장했다. 한 독립출판물 제작자의 일기를 모은 책이었는데 작가가 도서관 이용자였던 것이다. 도서관 근처에 살고 있고, 도서관이 산꼭대기에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건 정말 이용자만 아는 사실이다. 일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도 아닌데 문장에서 도서관 이름을 보는 순간 마치 길에서 가족을 만난 것처럼 활자가 한눈에 딱 보였다. 반가우면서도 어딘지 쑥스럽고 겸연쩍은 기분이 되어 작가가 과연 이 도서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여겨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종합자료실 답지 않게 서가가 적다는 점과, 서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좌석이 다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는 왠지 부끄러우면서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다. 내가 생각해도 종합자료실의 공간은 복잡하고 이상했다. 장서량은 점점 늘어나는데 서가가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오래된 도서나 복본을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가를 더 놓으려고 해도 안 된다. 지반이 약한 복층으로 되어 있어 서가를 더 두었다가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도서관을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말도 있었다. 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를 지으려 자금 문제로 중단된 것을 구에서 헐값에 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미스터리한 것은 건물의 구조만이 아니지만, 구조만으로도 여기가 과연 도서관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는 충분하다. 작가의 눈은 꽤 정확했다.


다른 이용자들도 물론 다 중요하지만 작가라고 하니 그 한 마디에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다음 번 회의 때 저 안건을 제시할까 한다. 지금은 비록 종합자료실이 아니라 어린이자료실 소속이고, 거기나 잘 하라는 말이나 듣겠지만. 건물을 헐고 다시 짓지 않는 이상 지금 상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도 예상되지만. 아니, 제일 먼저 듣는 소리는 ‘돈 없다’겠지. 그래도 지역 거주 작가가 외면하는 도서관인 채로 방관하고 싶지는 않다. 잘 찾아보면 미스터리한 구조면에서도 끄집어낼 만한 장점이 있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최근에 생긴 관심 때문에 읽게 된 작가의 글에서 내가 일하는 도서관이 등장하고, 책 저편에나 존재할 것만 같은 작가를 우연히 현실에서, 바로 이곳 도서관에서 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해졌다. 이 묘한 기분을 풀어내려다보니 자연스럽게 <디아워스>가 생각난 것이다. 시간, 공간, 사람, 긴밀하게, 또는 아주 별 것 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들. 그런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바랐던 때도 생각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어서 다시 영화와 책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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