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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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_pm08:02

by 강민선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부산진구의 성북초등학교에서 다녔다. 부산에 올 때마다 그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릴 때 이곳에서 살았다는 것과 이곳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것, 몇 명의 친구도 사귀어서 집에도 데리고 왔었다는 것. 그때 들었던 말이 삼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생각난다. “너 말투가 이상하다.” 나는 아마도 서울말을 썼을 것이고, 부산에서 나고 자란 여덟 살짜리 아이들에게도 내 말투는 이상하게 들렸던가 보다. 내가 어떤 말을 썼고 어투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나를 향해 또래 친구가 했던 그 말은 기억난다.


부산에서 보낸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동안의 시간 중에 기억나는 것이 또 있다. 하굣길에서 친구와 함께 집에 오는데 웬 남자아이들이 떼거지로 와서는 우리를 붙잡고 팬티를 내려 보라고 했던 기억. 하지만 이건 좀 어긋난 기억 같기도 하다. 그 무렵 어느 땐가 읽었던 성교육 동화의 내용 같기도 하고, 현실에서 겪은 일이라기엔 충격적인 내용에 비해 기억이 희미하다. 그게 시간이 오래 지나서인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긴가민가한 기억을 가지고 서른 살 즈음에 소설을 썼다. 제목은 「누가 내 팬티를 보았는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부산에서 보냈던 것은 부산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려 했던 아빠의 결정이었다. 6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이사 왔지만 정확히 6개월 동안 그곳에 있었다는 것과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목, 우리집 거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너 말투가 이상하다”고 말했던 친구들은 기억 속에 있다. 가족이 다함께 바닷가에 갔던 날도 기억난다. 내가 기억하는 첫 바닷가였다. 걸어서 갔던 것 같은데 성북초등학교 근처에 살면서 바닷가까지 걸어갈 리는 없으니 그 기억은 잘못된 것이리라. 우리집 문을 열고 한 블록만 걸어가면 바로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졌던 것 같은데. 오래전에 본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기분이다.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장면. 그때 일기라도 써 놓았다면 증명할 수 있을 텐데. 기억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니.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이 훗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는 서울 남산에서 보냈다. 중구에 있는 충무초등학교에 전학 와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일 없이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버리면 아쉬울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가령 서울에 이사 오자마자 유치원 때 친했던 친구와 재회하는 장면 같은 것. 김소연이라는 친구였다. 까무잡잡했던 나와는 달리 하얗고 예뻤던 친구. 나보다 약간 높은 곳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었다. “너 나 기억 나?” 정확하게 이 말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 비슷한 인사였다. 어떻게 잊겠는가. 유치원 때 그 애와의 작은 오해로 다툼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따돌림이라는 것을 처음 당해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절대로 오해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웃에 살면서 엄마끼리도 친했던지라 우리는 한동안 다시 붙어 다녔다. 3학년 때였나 그 애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애 집으로 가는 길이었던 언덕과 그 사이에 있는 구멍가게는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김은정이라는 친구는 역시 하얗고 정말 예쁘게 생긴 작은 아이였다. 같은 반이 되기 전부터 나는 그 애의 존재를 알았는데 예쁜데다가 다른 반의 반장이었기 때문이다. 각 반의 반장들은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었다. 왠지 나와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는데 6학년 때 나는 그 애와 가깝게 지냈다. 그 애가 사는 학교 앞 묵정아파트에도 자주 놀러갔다. 그 애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도 맛있었다. 방바닥에 엎드려 누워 그 애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깜짝 놀랐던 기억.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당시 반 아이들끼리 편지와 카드를 주고받았는데 그 애에게 받은 작은 카드 안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와 친해지고 싶었어.’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로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잊고 살았다.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도 몰랐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도 여전히 수동적이어서 누군가 먼저 다가오고 이런저런 것을 같이 하자고 해야만 차차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친구가 되어 있는 식이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는 항상 누구와 같이 타야 하나 속으로 걱정했다. 한번은 반에서 이상한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던 한 아이와 같이 타게 되었는데 멀미가 심했던 내가 토한 것을 마지막까지 남아 다 치워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김미진이다.


나는 왜 갑자기 이곳에서, 어린 시절 아주 짧게 머물렀을 뿐인,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여행지일 뿐인 부산에서 난데없이 과거의 그들을 호명하고 있는 걸까. 그들의 기억 속에 나는 이미 없을 텐데. 지금은 연락할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분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기억은 얼마나 갈까. 그 후로 만난 적도, 소식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세월이 더 지나고 나면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불러본다. 기록해본다. 한때 나의 동경이었고, 오해이기도 했고, 기피와 편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의외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당신들을. 지금은 모두 어떤 어른들이 되어 있을까. ‘너와 친해지고 싶었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뒤미처 전하는 고백을 다시 들어볼 날이 또 올까. 다들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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