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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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_am01:09

by 강민선


부산에 온 첫날까지도 내가 이곳에서 그 책들을 만나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책을 주문하면 당일에도 받아볼 수 있는 이 시대에 그 책은 좀처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주치는 책방마다 들어가서 일일이 뒤적이거나 재고가 있는지 물어봐야했다. 허사였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모두 품절이었다. 당분간은 새 책 작업을 하느라 기존 책들은 만들지 않을 거라는 공지도 있었다. 사람 심리가 이상도 하지. 이러니까 더 찾고 싶어진단 말이다.


어제 방문했던 부산 금정구의 독립책방인 ‘샵 메이커스’에서도 그 책을 찾지 못했다.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나가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도 남편이 책 한 권을 사서 덜 미안한 채로 나올 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열었다. 정말 단 한 군데도 없을까. 출판사 홈페이지를 한 번 더 뒤적이다가 그 작가의 책이 입고되어 있는 서점을 지역별로 표시해 놓은 지도를 발견했다. 부산에도 있었는데 연제구의 ‘카프카의 밤’이라는 책방이었다. 왜 진작 이 페이지를 확인하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괜히 다른 책방을 찾아 서성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다음 날의 일정을 바로 변경했고 변경된 계획에 따라 오늘 아침 ‘카프카의 밤’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대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일요일 오전의 주택가는 고요했다. ‘카프카의 밤’은 시립연산도서관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지방 어디를 가든 도서관을 만나면 일단은 반가웠다. 도서관처럼 찾기 쉬운 랜드마크도 없어서 길을 잃을 위험은 없을 거란 안심도 든다. 도서관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와도 ‘카프카의 밤’은 문을 열지 않았는데 여유 있는 삶을 위해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분일 테니 그럴 만하다며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근처 빵집에 가서 빵과 커피를 먹었다. 맛이 좋았다. 한 시간 반 정도 앉아 있다가 다시 가보았다. 문이 열려 있었고, 가운데 테이블 위에 내가 찾던 책 두 권이 보란 듯이 진열돼 있었다.


“그거 다 손수 만든 거예요.”

그 책을 들고 펼쳐 보는 내게 책방 주인이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거 사려고 여기 왔어요.”

주인은 적잖게 놀랐다. “어머, 그래요?”

나는 주인에게 이 책을 찾기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여러 곳을 찾아다닌 것과 서울에 있는 동네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것, 여기서 이 책을 만나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책방 주인은 무척 신기해했다. 무엇보다 반가워했다. 차를 주려 했지만 마시고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작가에 대해서도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는지,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읽고 싶은지. 작가를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거니와 알게 된 것도 최근이고 읽은 책도 두 권이 고작인데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주 잘 만든 책이라는 최대의 장점이 작가와 나, 그리고 부산의 한 책방 주인을 연결시켜준 묘한 상황. 나도 신기했고, 반가웠다. 주인은 뭐라도 주고 싶다며 책방 안을 둘러보더니 빨갛게 물든 나뭇잎을 코팅한 것을 건네주었다. 주인의 명함과 함께 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기약을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것을 믿으며.


내일이면 벌써 일상으로 복귀하는 날이다. 일상이 언제나 여행 같고 여유 있고 즐거웠으면 좋겠지만 해야만 하는 책임과 의무는 자유의 범위를 한정지을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도 의미를 찾아보려 하지만…… 서울로 돌아가면서 그렇게 찾던 책 두 권과, 그 책을 찾기까지의 여정과, 짧지만 두 편의 글을 챙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열심히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온갖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만 하는 것과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는데, 그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내 안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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