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3_pm10:10
내가 일하는 곳은 비밀이 참 많다. 아무리 부서별 기밀이라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런 게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의혹이 있다면 풀어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애초에 의혹이라는 게 없는 조직이라면 참 좋겠는데, 어떤 의혹도 없는 조직이 있기는 할까? 문득 든 생각이지만 오래전부터 들었던 생각.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의혹 제로의 조직을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찾아내기는 힘들 터. 인터넷 검색이 고작이겠지만 그걸로 어찌 진실을 알겠는가.
이 글은 쓰기가 두렵다. 아니, 쓰는 데에는 두려움이 없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될까봐 두렵다. 아니, 읽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오인할까봐 두렵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이라고 딱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지 폭로와 고발은 아니다. 보다 세련된 폭로와 고발을 원한다. 보다 아름다운 폭로와 고발을 원한다. 그게 뭘까. 그러니까 말하는 입이 더러워지고, 듣는 귀가 썩어 들어가는 폭로와 고발이 아니라…… 뭐?아름다운?그런 폭로와 고발이 있기는 할까?
이곳은 전설의 고성처럼 소문만 무성하다. 확인해볼라치면 사방이 적이 된다. 의혹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떠나고, 그것을 견딘다기보다 무시하는 쪽은 오래 남는다. 무시하기는 참으로 쉽다. 나도 때때로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힘들지만 보람도 있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책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 석양만이 자료실의 주인이 되는 시간이 무섭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걸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책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란 확신이 든다. 책 때문에 남아 있다는 말. 꽤 그럴듯한 핑계다.
나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 잘 지낸다는 것은 친밀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못 지낸다’의 반대 표현 정도 되겠다. 그만두기 전까지 매일 얼굴을 봐야하고, 함께 협조해야 하는 일도 많은데 대면하기조차 껄끄러운 사이를 만들어버리면 그거야말로 내겐 견딜 수 없는 환경이 돼버린다. 그래서 잘 지내려 한다. 다신 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적을 두지 않으려 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내 앞에 번갈아 고개를 내미는 두더지 같은 것들. 그때마다 정답게 망치로 때리면 된다. 게임은 언젠가는 끝날 테니.
글쎄, 언제쯤 그 게임이 끝날까. 게임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쉽지만, 모두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버리면 쉽지만, 저마다 사정이 있고, 어차피 승산 없는 게임에 인생의 전부를 낭비하진 않겠다는 마음가짐일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쉽지만, 쉬운 길은 얼마든지 있지만…… 어떤 일로 인해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영순이가 해준 말이 있다. “너도 그곳을 이용해.”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이 모든 상황이 그곳이 나를 이용하기 위한 거대한 계획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무섭고 불가항력적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