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1_pm10:45
카페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다가, 어느 한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다. 멈추질 않았다.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온 아버지가 가족들을 다 불러 모으고는 기분 좋았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하는, 그냥 그런 장면이었다. 눈물이 나온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아버지 생각이 나서일 것이다. 우리집 생각. 아버지도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종종 그랬었는데, 나와 동생은 그걸 엄청 싫어했었다. 잘 놀고 있다가도 아버지 발자국 소리만 나면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썼던 기억. 소설 속 가족 분위기는 꽤나 즐거워 보였지만 내가 겪은 시간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었는데 왜 우리 가족은 그러지 못했을까. 왜 빗나갔을까. 나 참. 소설 속 가족과 현실의 가족을 비교하다니. 그래서 울다니. 어이없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아마도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경험과 나의 상황을 대조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나는 김지영보다 삼 년이나 먼저 태어났지만 김지영보다 나았던 점도 있었다. 집에 남자 형제가 없어서 가족 내 차별 같은 건 받지 않았다. 내가 공부를 안 하고 못했을 뿐이지 ‘넌 여자니까’라면서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외박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어서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네 집에서 자주 자고 왔다. 한 마디로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다. 고민도 걱정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 혼자 다 했다. 아버지와 뭔가를 같이 상의해본 기억도 없는데 그건 어느 시점부터 내 쪽에서 일부러 그런 자리를 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고 보니 김지영보다 나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내가 차별 받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딸들이라서 서운했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그걸 내색한 적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들어줬을 거라는 것.
예전 일들을 생각하면 후회가 절반이라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이 많이 났다. 책을 읽다가 멈추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생각이 드는, 생각이 나는, 생각에 잠기는 진기한 경험이었다. 소설을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가? 주인공이 내 또래의 여자이기 때문일까. 김지영이 겪은 일 하나하나가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익히 알고 있어서 뻔하기만 했던 일화들은 내가 지나온 삶 어딘가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했다. 김지영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왜 그렇게 살지?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적어도 주인공씩이나 되면서 모범을 보이란 말야. 당하고 참는 모습만 보이지 말고 제발 좀! 하지만 소설 속 김지영은 내 뜻을 끝내 들어주지 못했다. 대신 작가의 뜻에 따랐을 것이다. 그대로 수용하기엔 어딘지 찜찜한 결말 역시 작가의 뜻이었을 것이다. 억울하면 내가 작가해야지 뭐.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로 알게 된 것도 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대해서 내가 한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 말이다. 왜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지, 왜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바꿔야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가 말이다. 그건 정말 이상한 건데. 또 혼인신고서에 자녀의 성을 아빠 성에 따를 건지 엄마 성에 따를 건지 정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이제 알았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했으면서도 그걸 알지 못했다니!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런 것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해보기는커녕, 명시돼 있는 문구조차 들여다보지도 않고 난 대체 어디에 무슨 신고를 한 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김지영이 유모차를 끌고 집 근처 공원 벤치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다가 옆에 있던 일군의 직장인들이 자신을 흘깃거리며 ‘맘충’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다 겨우 짬을 낸 잠깐의 휴식이었고 커피는 1500원짜리였다. 직장인들도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같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들은 근무 중에 취하는 정당한 휴식이고, 김지영은 대낮에 한가로이 커피나 즐기고 있는 맘충이라니! 김지영의 일상과 마음 상태를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선 분개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어땠을까. 그러나 나 역시 얼마 전까지는 직장인의 시선이었음을 고백한다.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대낮에 도서관에 오는 엄마들이었다. 저 사람은 대낮에도 한가하게 도서관에 오는구나. 저 사람은 일하지 않겠지. 저 사람은 나보단 편하겠구나. 저 사람은…… 물론 내 일이 힘들어서 든 생각이겠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겪어보지도 않고 그저 내 시선이 닿는 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경솔하고 나쁜 일인지.
알긴 알겠는데 글쎄, 대낮에 한가하게 도서관에 와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괜한 불만을 제기하고, 꼬치꼬치 따지고 늘어지는 일들이 벌어진다면 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쨌든 나니까.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