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6_am12:51
어릴 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KBS 독립영화관에서 <우리들>을 해주는 것을 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고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다 그냥 지금의 감정일 뿐 실제의 과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고, 등등의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보는 내내 먹먹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이것을 보는 내내 사실과는 무관할지도 모를 내 과거를 들여다보는 기분.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무엇을 했을까? 짝꿍은 누구였고, 친구는 어떤 아이였을까?
궁금해 하면 내 모든 기억이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나로선 희미하고도 산란한 조각 맞추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을 하나로 모을 수 없기에 글로도 남기지 못한다. 너무나도 어렴풋해서 기억해내려면 어지럽기까지 한 과거의 교실 책상에는 그저 어린 내가 홀로 앉아 있고, 보이는 건 뒷모습뿐이어서 도무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몇 명의 가까웠던 얼굴과 이름이 생각나기도 한다. 고백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좋아했던 아이도. 하지만 서사 없이 파편적이기만 해서 푹 잠길 만한 추억이랄 게 없다. 심각한 기억상실이다. 트라우마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게 나을지. 그런데도 <우리들>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대체.
그건 영화가 나의 과거만을 건드린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흐르는 시간 가운데서 그 무엇도 과거만을 건드릴 수는 없다. 현재만을, 미래만을 건드리는 일도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을 건드려도 모든 시간이 흔들린다. 모든 삶이 물결친다. 파동이 멈추고 다시 아무 일 없던 듯 잔잔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새벽 늦은 시간까지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후로도 이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말로 할 수 없는 말을 담아 겨우 겨우 여기까지 작성하고는 새벽 세 시가 다 되어서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눈을 감았다.
이 글이 벌써 사서함 4.
39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4까지 왔다. 매일매일, 어떤 날은 하루에 두 편씩도 써 놓고선 요즘은 한 편 한 편의 사이가 길어졌다. 고무줄처럼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다. 그간 할 일도 많았지만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생각하는 일은 역시 이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연습 삼아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모아 새로 다운 받은 편집 프로그램에 앉히고 출력해서 실로 꿰매보기까지 했다. 코덱스 바인딩 기법인데 유투브 동영상을 보고 대충 따라한 거라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다. 완성도는 당연히 떨어지고, 직접 해보니 이렇게 집에서 출력하고 제본하는 것에 대한 회의도 들기 시작했다. 한두 권 정도야 만들겠지만…… 하지만 이건 글을 다 완성한 이후에 생각해도 될 일이고, 지금은 남은 세 편의 글에 과연 무엇을 넣어야 아쉽거나 후회하는 일 없이 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를 더 생각해보자.
이런 생각은 단지 책의 완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완성과도 닿아 있다. 애초의 계획은 먼지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가볍고 부담 없는 글쓰기였지만 쓰다 보니 차츰 생각이 깊어지고 어떻게 써야할까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아무리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가볍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내면을 여행하면서 진실을 찾는 일이었다. <우리들>을 보고 난 뒤 늦은 새벽까지 정리하지 못했던 결론도 결국 그거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어야 했던 그 짧고도 전부인 시간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서 2학기가 시작되고 가을 직전까지. (주인공들이 내내 여름 반팔 티만 입고 나온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그 시간이 내게는 전 생애의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끊임없이 만나고 경험했던 순간들. 때로는 빛났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라는 질문은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일까?’로 자연스럽게 치환된다. 지금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누구를 만나며 어떤 대화를 하고 있나? 무엇을 생각하며 사나? 내 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게 될까? 어떤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