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7_pm11:02
작년 5월 1일에 단발 컷에 볼륨매직을 한 이후로 10개월 6일 만에 미용실에 갔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고 말았다. 너무 오랜만에 가서 내 머리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인 걸까. 정확하게 길이는 어느 선까지며 컬은 어느 정도이고 숱이 많으므로 차분해 보이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점 등등을 말하지 못해서인 걸까. 그러기는커녕 일 년 만에 미용실 방문이라는 자랑 같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으며 미용실 가기 귀찮아서 집에서 염색하고 있다는 둥 헤어스타일이나 헤어 건강 같은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줬으니 다 내 잘못이다. 생각보다 껑충 올라가버린 짧은 길이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굵은 머리카락과 많은 숱 때문에 가로로 부해져서 꼭 가분수처럼 보이는 지금 내 모습. 여하튼 숱 많고 긴 머리 관리가 힘들어 큰마음 먹고 큰돈 들여 다녀온 미용실인데 오히려 거울 보며 한탄하는 시간만 더 길게 보내고 있다. 누굴 탓하겠는가. 한 달만 있어 보자. 그러면 적응될 테니. 그리고 이제부턴 미용실과 친해집시다. 나는 소중하니까.
소중한 내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간 탓이 클 것이다. 미용실에서 낯선 사람들과 오랫동안 한 공간에 머물며 온갖 약품 냄새를 맡은데다가 아바타처럼 시키는 대로 머리를 적셨다가 말렸다가 데웠다가 식혔다가를 반복한 것은 물론이요, 시시각각 흉측하게 변하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감내했으니 감기에 걸릴 만도 하다. (내가 이래서 미용실에 가는 걸 싫어한다.) 집에 오는 길에 사온 테라플루를 마시며 오락가락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아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이라도 써야겠다. 오늘도 출근한 것 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출근만큼 어려운 일을 해 놓고도 그것밖에 못했다고 생각하다니 나는 지극히도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인 걸까. 아니,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헤매는 사람. 이것이 정답이다. 그동안 참 많이도 헤맸었다. 더 이상 헤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헤맨다. 헤매는 게 천성이라 해두자.
새로 들어온 책 중에 『학교 가기 싫어』라는 그림책을 보다가 속으로 ‘나도 도서관 가기 싫을 때 많은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림책의 화자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옆에 앉은 선생님과 엄청나게 재밌어했다. 그러니까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배우러 가는 어린이가 아니라 일하러 가는 선생님인 것이다. 아침에 눈 뜨기 싫고, 출근하기도 몹시 싫은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하지만 선생님이니까 빠질 수 없다는 이야기. 아유, 그렇지, 선생님이면 못 빠지지, 공감의 한숨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과 어른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다르겠지. 아이들도 사정이 있겠지만 어른들의 사정은 좀 더 슬프지 않나…… 그림책이지만 어른이 보아도 심히 몰입이 되는 책들이 있다. 그림책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크리스토프 니만의 말이었던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에서 처음 본 사람이다. 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겠다.) 그림책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그림책이 있다. 그런 책을 만날 때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헤매는 것을 천성이라 말한 나는 학교 가는 길에 방향을 틀어서 혼자 방황하다 돌아왔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고3 때 발병해서 삼십 대가 되어서까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증세였다. 증세였는지 치료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고, 싫으면 언제든 도망갔고, 그래서 마냥 좋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하여간 종종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탓인 것 같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정말 특별한 이유. 지금은 그런 만큼의 특별한 이유랄 게 없어서 계속 성실히, 부지런히 기상해서 출근하고 있다.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 걸까. 휴, 나도 도서관에 가기 싫은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하지만 사서라서 빠질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