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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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9_pm01:35

by 강민선

종이를 고르며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을까?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스승의 날 맞이 글짓기를 숙제로 내준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검사를 마친 선생님이 제일 잘 쓴 글이라며 내 글을 읽어주셨다.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들려준) 내 글이었다. 당시 좀 무서운(지금 생각해보면 배우 송강호와 닮은) 교감 선생님이 계셨는데 (영화 <넘버3>의 송강호처럼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다.) 어느 날엔가 우리 교실 칠판에 ‘사람 인(人)’ 자를 크게 쓰더니 (내 기억으로는)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지’라는 말을 했던 것을 인용해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용이 들어갔는데 그 말을 같이 들었던 아이들이 그 부분에서 함께 웃었던 기억.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전날 숙제를 마치고 아빠가 한 번 읽어봐주셨던 기억도 난다. ‘역활’이라고 썼던 것을 ‘역할’로 고쳐주셨던 것도. (이건 정말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때 아빠 손가락에 꽂힌 담배 한 개비와, 피어오르던 연기 모양까지도.)


새마을문고에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당시 필동 새마을금고 2층에 있던 작은 문고였는데 나는 주로 하이틴 로맨스 물을 읽었다. 어느 날 사서(선생님이라기보다는 언니 같은 느낌의) 선생님이 독후감 써놓은 것 있으면 한번 내보지 않겠느냐며 구에서 열리는 독후감 대회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읽은 건 로맨스 물이지만 나는 당시 학교 필독도서이기도 했던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의 독후감을 써서 냈다. 얼마 지나서 학교로 연락이 왔다. 구에서 상을 받게 되었으니 시상식에 참석하라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가끔 아이들의 글을 보며 놀라는데 그런 아이들에게는 꼭 말해준다.

너 참 잘 쓴다.

어머니, 아이가 글을 참 잘 써요.


성적이 곤두박질치다 못해 그 힘든 꼴찌까지 해냈던 고 3때 나는 작문 점수만큼은 잘 받고 싶어 했는데 그냥 잘 받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백점을 받아야했다. 그것만 공부했다. 다른 건 다 바닥이었지만 그것만 백점에 그것만 전교일등이었다. 실제 작문 실력과는 상관없는 수업과 시험이었다. 국영수과에 비해 비중도 없고 대학입시에 별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뭐 하나만큼은 가장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작문이었다. 그랬던 내 모습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다른 것도 좀 잘하지 그랬어,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내 소리가 그곳에 닿진 않겠지.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도서 대출이 모두 전산화된 상태였지만 책 뒷부분에는 아직 카드 봉투가 부착되어 있는, 이를테면 과도기였다. 과도기 후반부. 더 이상 아무도 카드를 쓰지 않았지만 나는 꼬박꼬박 내가 빌려서 본 책 뒷면 카드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그런 재미로 책을 빨리 빨리 읽기도 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굳이 그걸 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그런 아닐까.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나만 알지. 나만이 그 책을 알고, 그 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 뿐이지. 내가 나에게 증명할 수 있으면 되지.


벌써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이게 뭐라고 굳이 마지막이라 이름 붙이며 진지해지는 걸까. 처음엔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슬프기까지 하다. 마지막이라니. 어서 다음 계획을 세워야겠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풀어볼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24시간도 남지 않은 탄핵심판 결과는 어떻게 될까. 어떤 재미난 책을 발견하게 될까. 어떤 좋은 사람을 알게 될까. 이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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