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서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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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1_pm03:22

by 강민선


3월 10일 오후 12시 22분. 탄핵이 가결되었다. 훗날에는 이번 일을 어떻게 기록할까. 누구의 어떤 기록이 후세까지 전해질까. 무엇보다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은 길이길이 남았으면 좋겠다.


오후 4시 50분. 도서관 창으로 해가 낮고 길게 들어온다. 누군가는 오늘이 역사에 남을 날이 될 것이고,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우리가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어서일까. 이 시간 속에 온전히 내가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 시간은 현재일 수도 있고, 과거일 수도, 미래일 수도 있다. 어디에 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지금 나를 향해 비추고 있는 저 햇빛을 자꾸만 물끄러미 쳐다보게 된다. 작은 창을 비집고 길게 들어와 자료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저 빛. 이 세상에서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가 딱 하나 있다면 저 빛이 아닐까.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저 빛은 알고 있을까. 그저 햇빛만 보며 살면 되는 걸까. 해가 뜨면 눈을 뜨고, 해가 비추는 곳으로만 걸어가면 되는 걸까. 그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퇴근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에, 가방을 둘러메고 힘든 언덕을 올라 이제야 도서관에 발을 디딘 이용자들이 있다. 개인 공부를 위해 3층 열람실로 바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고 필요한 책을 찾아 맞은편 종합자료실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3년 전만 해도 내 모습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지금처럼 데스크 안쪽에 앉아 이용자를 응대하고 도서관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입장이 되어 있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언젠가 작가와 만나는 행사에 갔다가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소설집 한 권을 막 낸 신인작가였는데, 얼마 전에는 자신도 독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독자와 작가의 경계는 모호하고 언제든 서로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는 말. 사서 데스크에 앉아 자료실을 드나드는 이용자를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자리가 바뀌어져 있듯 언젠가는 평생 독자였던 나도 작가가 되어 독자를 마주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3월 11일 쉬는 토요일 오후. 어느새 봄이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이 글을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또 그렇게 추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이 글이 끝나도 내 삶은 이어질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도서관에서든 어디서든 계속 일을 할 것이고, 맡고 싶지 않은 업무도 맡아서 해야 할 것이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삶은 행복의 연속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하나쯤은 좋아하는 일도 같이 하며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싫고 싫은 많은 것들을 견딜 수 있는 어떤 일. 책 읽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글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예쁜 색감의 종이와 펜을 만날 때,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음악을 들을 때,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릴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게 할 무언가와 부딪히는 모든 순간들. 결코 자주 오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 순간이 내게 다가왔을 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감각은 나이 들지 않기를 바란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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