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8_am03:20
꼭 유리 같다.
꼭 유리처럼 건드리면 깨질 것 같다고 말했던 사람이 문득 생각났다. 공모사업 설명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밥 먹을 시기를 놓쳐 점심을 거르고 연신내에서 성북동까지 간 탓에 설명회를 듣는 동안 배고픈 걸 넘어 쓰러질 뻔 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두통이 심해졌고 온몸이 떨리면서 감기 기운까지 느껴졌다. 설명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던 중 다행히도 빨리 끝나서 근처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따뜻한 커피와 데운 빵 한 접시. 허겁지겁 먹고 정신을 차리려 애써보았다. 두통이란 게 쉽사리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아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집에 가서 약을 먹자. 평소 퇴근 시간보다 일찍 끝났지만 집에 오는 전철 안은 앉을 자리 없이 빽빽했다. 앉고 싶었다. 앉아서 눈을 붙이고 싶었다. 머리가 아픈 건 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빈 속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침부터 생각할 것이 많았던 게 원인일 터. 생각=두통. 언제부터 성립된 공식일까.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아프다. 생각이 생각을 이끌고, 그 생각이 다음 생각을 데리고 왔다. 줄줄이 이어진 생각의 끝에서 바로 저 말이 생각난 것이다. 꼭 유리 같다는 말.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것도. 나도 그런 말을 들었지.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지. 나조차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지금은 그랬던 나와 꼭 닮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미숙한 내가 나이 조금 먹었다고 미숙했던 그날을 이렇게 회상할 줄이야, 라는 생각보다는, 지금의 내가 거울 속의 나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숙제처럼 떠안고 있다. 단번에 해치우지 못하고 그저 미루고만 있는 중이다. 그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과거의 나라면 어떤 말을 듣길 원할까. 어떤 말을 듣고 싶지 않을까. 어떤 말에 마음을 다쳤고 어떤 말에 마음을 닫았을까.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새벽 세 시다.
구구절절:
句句節節. ‘한 구절(句節) 한 구절(句節)마다’라는 뜻이기도 하며,
이곳에서는 99절절. ‘아흔아홉 개의 절절함’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