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 꿈에

20170320_am10:29

by 강민선

꿈속에서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말하자면 복잡한데 그러니까 내가 무슨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그 속의 주인공이 나였는데 어느 순간 VR(virture reality, 가상현실)처럼 드라마 속 장면을 내가 오롯이 겪고 있는 느낌. 하긴 꿈 자체가 VR이니까 VR 속 VR, 이중 VR, 액자 VR구조정도라고 설명하면 조금 쉬울까. 결혼한 유부녀가 이런 얘길 해도 될까 싶지만 꿈인데 뭐 어때 하는 심정으로 털어놓자면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꿈에 나왔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길거리에 그가 서 있는 것이다. 설마 설마 하면서 가까이 가보니 확실히 그였다. 처음에는 지나쳤는데 이대로 지나치는 게 아쉬워 자전거를 잠시 멈춘 채 그 자리에서 뒤돌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땡땡땡, 잘 지냈어? 분명히 그랬다. 뒤에 잘 지냈냐는, 오랜만에 만나서 짧은 시간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다들 하는 그런 질문을 붙였다. 그때 그의 표정. 늘 짓던 멍한 표정. 이토록 생생할 수가. 두 번째 장면에서는 내가 CD를 잔뜩 반납하려고 줄을 섰는데(하, 이건 도서관 이용자 VR 이겠지?) 내 차례에서 사서가 오늘 업무가 끝났으니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다들 수긍했다. 그냥 운이 나빠 내 앞에서 끝났구나, 돌아가서 다음에 해야겠다 하고 돌아나오는데 눈앞에 턱과 경사가 높은 계단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계단을 내려와야만 했다. 옆에 난간이 있었지만 그것만 의지하기엔 순식간에 미끄러져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고도의 계단. 어쩌지 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딱 나타났다. 그를 의지해 계단을 무사히 내려오고 건물 앞에서 헤어졌나? 그가 앞을 보며 마구 뛰어갔나? 뛰어간 것은 나였나? 하여튼 그랬다. 한 마디로 개꿈이지 뭐. 그가 왜 꿈에 나왔을까를 생각할 것도 없는 게 지금 다른 생각들로 복잡한 와중이고 그에 대한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꿈에 나왔으니 하게 된다. 잘 살고 있나? 잘 살고 있겠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희망도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 고집만 피우고 사람 의존증이 우울증 수준으로 심해서 나에게 걸려든 당사자는 언제든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일해. 나랑 어울리지? 어울린다고 말해! 도서관이란 말은 근사하지만 들어가보니 다 비슷하더라. 모든 일터가 그렇듯 슬프고 눈물 나는 일이 많지만,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어. 버티지 못하고 늘 흔들리며 살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반성, 뭐 그런 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아, 나 차도 샀다. 운전 좀 해. 면허 따는 데 석 달이나 걸렸고 시험은 네 번 만에 붙었지만 어쨌든 해냈다고. 승리! 이건 무슨 소린가. 그에게 하는 건지 과거의 나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말들. 한때 많은 것을 공유한 유일한 1:1의 관계였던 사람. 철저하게 과거에만 존재하는 완벽한 VR. 우린 끝났어. 아쉬운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도 못한 채,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가장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지점만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헤어졌다는 것.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사는 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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