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5. 배웅

20170322_am12:53

by 강민선
어쨌거나 세상에는 또 하나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흔히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멋진 밤을 보냈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우리의 삶에서 영원히 멈출 수 없듯, 우리의 사랑과 우정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 이지민,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문학동네, 2008)


한동안 꽤나 열심히 썼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나의 예전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내가 썼던 글을 보고는 책이 읽고 싶어져 도서관을 뒤졌다. 내가 있는 도서관에는 없었고 옆 동네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빌렸다. 대단한 서평아니었다. 인상적인 몇 구절과 거기에 보태는 사적인 몇 마디 정도. 인터넷 서점에서 사이트에 책 소개글을 올리는 알바생 시절이었는데 신간도서가 손에 들어올 때마다 얼른 읽고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다는 아니고 마음에 드는 책만. 하루 열 권, 스무 권이 넘는 책들이 내 책상에 올라왔는데 그걸 다 읽을 수 없으니 대충 넘겨보다가 그럴 듯한 문장이 나오면 발췌하는 정도였다. 아마도 저 책은 내가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게 아닐 확률이 높다. 저 책이 2008년도에 나왔으니 9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어본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흐뭇하게 덮는다. 2008년도는 내게 암흑의 시기였다. 암흑의 시기는 그 전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해 봄에 사귀던 사람과 막 헤어졌는데 가만 보자, 저 책의 초판 발행일이 4월 9일이었으니 딱 그 무렵이다. 괴로운 마음을 안고 온갖 청승맞은 짓을 다하면서도 무던 그 알바를 3년씩이나 했던 것은 최소한 하루에 한 권 이상은 블로그에 올릴 만한 책을 만날 수 있어서였을 거다. 그때 그 시간들이 아직도 훤하다. 당시 회사는 파주출판단지에 있었고 매일 아침 합정역에서 회사 통근버스를 탔다. 비나 눈이라도 오면 꽉꽉 막혀서 직원 전체가 한두 시간 씩 지각할 수밖에 없었던 자유로, 점심시간에 바람 쐬기 딱 좋은 출판단지 내 산책길과 낯설고도 재밌게 생긴 건물들,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몇 사람. 지금은 그 터도 사라졌고, 자유로는 일 년에 한 번 지나갈까 말까 하는 길이 되었으며, 경험유무와 상관없이 이별 상담에는 전문가였던 그녀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그때 그렇게도 부지런히 써댔던 글 역시 닫힌 블로그 안에서 조용히 묻힌 채 9년이 흘렀다. 내가 만난 신간도서는 지금 낡은 도서관 장서가 되어 내 손에 들어왔고, 신기하게도 이 책을 다 읽자 그때의 나와 함께해준 모든 것들이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오랜 시간을 거슬러 이제야 제대로 배웅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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