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6_pm07:53
속초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평 휴게소에 들렀다. 어제 그렇게도 찾아가려고 했던 그 가평 휴게소. 역시 넓고 깨끗했고 먹을 것도 많았다. 속초에 가는 길이었다면 더 신이 났을 테지만 둘 다 빈속이었기 때문에 (왜 우리는 항상 빈속인가.) 먹을 게 많은 휴게소를 찾은 것만으로도 족했다. 나는 라면과 주먹밥을, 남편은 돌솥알밥을 먹었다. 알감자와 커피도 먹었다. 느긋하게 화장실도 다녀왔다. 식당 한쪽의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세월호가 완전히 부양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배 곳곳이 많이 녹슬고 망가져 있었지만 영락없이 그때 침몰했던 그 세월호였다. 지켜보던 유가족들, 특히 단원고 미수습 학생 학부모들은 눈물을 흘렸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2년 11개월 10일만이다. 이십 일이 모자란 3년 전 그날 나는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 뉴스에서는 제주를 향하던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전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뒤이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드레스를 골랐다. 그날 집에 돌아온 오후 다섯 시 무렵까지 세월호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집에 와서야 전원구출이 오보였다는 사실과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제주도 수학여행을 위해 탑승한 삼백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실종됐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했다. 자고 일어나면 사망자 수는 늘어나 있었다. 틈만 나면 뉴스를 봤다. 생존자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주변은 깊은 바다였다. 깊고 깜깜한 바다. 그 무렵 연일 비가 왔고 파도가 거셌다. 수색 중에 사망 사고가 나는 일도 생겼고 그런 이유로 수색은 종종 중단됐다. 그해 1월에 도서관에 입사한 나는 업무 숙지와 결혼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스트레스는 말도 못했고 결혼을 하네 마네 갈등도 심했다. 그 사이에도 사망자는 계속해서 나왔다. 세월호와 그 주변에 대한 의혹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먼저 도망친 선장을 비난했고 국가재난 시 최고 지휘자 역할을 다하지 못한 대통령을 비난했다. 나는 그날 고른 드레스를 입고 한 달 뒤 어색하게 웃으면서 스튜디오 촬영을 했고, 두 달 뒤에는 결혼식을 했다. 도서관 근처에 신혼집을 얻었고 그런 탓에 직원들을 불러 집들이도 했다. 고기를 굽기 위해 대용량 불판을 구입했다. 두 번의 설과 두 번의 추석을 며느리 모드로 보냈고, 두 번의 4월 16일마다 도서관에서는 종이배를 접거나 노란 리본을 나눠주었다. 두 번의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운전면허를 땄으며 소형차를 36개월 할부로 샀다. 2016년 가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졌고,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기까지 총 스무 차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국정농단의 피의자 신분이 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의 늑장수사와 변명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순식간에 세월호가 인양됐다. 짧게 자주 일상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아니 일상의 하나인 것처럼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차가 있으니 계획은 더 잦을 것이고 이번 속초, 아니 춘천 여행을 계기로 고속도로와 국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험도 해보았으니 앞으로의 기대 또한 크다. 베스트 무사고 드라이버가 되겠어. 앞으로의 기대가 크기로는 이제 막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교 2학년 어린 학생들만 할까. 하지만 나는 그저 타인으로서 그들을 멀리, 아주 멀리 바라볼 뿐 그 슬픔과 안타까움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열거했다시피 나는 세월호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같이 울어주어 고맙다는 유가족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이제 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된 것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