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7_pm05:45
김포공항에 갔다. 비행기 타러 가는 거면 참 좋았겠지만 육아휴직 중인 팀장님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다음 달인 4월이면 팀장님은 복귀를 하고 같이 일했던 한 분의 선생님이 이달 말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같이 모이기로 한 것이다. 팀장님은 원래대로라면 한 달을 더 쉬고 5월부터 근무하는 거였지만 같이 일했던 선생님이 그만두고 한 달의 빈자리를 채우기가 힘든 관계로 부득이 먼저 출근하게 되었다. 누구도 빨리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팀장님이 먼저 나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잖아도 팀장님은 다른 육아휴직자들에 비해 3개월을 덜 쉬기로 되어 있었다.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년, 합해서 15개월을 쉴 수 있었지만 도서관에서는 1년 계약직으로 육아휴직 대체 근무자를 뽑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팀장님이 육아휴직을 1년으로 하냐 1년 3개월로 하냐 고민하고 있을 때 ‘1년 쉬어주면 기관 입장에서 좋지. 보통은 1년 기간으로 계약직을 뽑으니까.’라고 압력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다. 바로 옆에서 같이 들었으니까. 그 말을 한 사람의 부인 역시 곧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1년 3개월짜리 휴직을 냈고 1년 3개월짜리 대체 근무자를 뽑았다. 여기서 배운 것이 있다면 내 휴직 내가 챙기지 아무도 대신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 여하튼 팀장님은 1년 3개월을 쉴 수 있는 것을 1년만 쉬고 돌아오기로 한 것인데 그것마저도 온전히 다 못 쉬고 한 달을 먼저 출근하게 된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팀장님이 일찍 오게 된 것, 그래서 더 이상 내가 팀장 대리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팀장 대신 팀장 회의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주간 및 월간 보고자료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그 외에도 한 자료실의 책임자로서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한 명의 여성 직장인으로서의 권리가 조직 안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다. 왜 팀장님은 자진해서 먼저 나오겠다고 한 것이며,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관리자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을까. 먼저 나오라고 하지 않았으니 자신들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는 걸까. 여긴 알아서 돌아가도록 할 테니 걱정 말고 더 쉬다 오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 내가 관리자 입장이었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한 명보다는 다수의 편의를 지키는 것이 불가피했을까. 책임감이 강하고 배려심이 남달리 깊은 팀장님은 그동안 자신을 대신해서 일해 준 사람들에게 도리어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유모차에 실려 나온 아기는 팀장님을 빼닮았는데 내내 조용하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발 여기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듯 우는 소리를 냈다. 우는 소리를 내면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장소를 옮겼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아기가 제일 부럽다. 아기는 세상의 중심이고 모두가 아기의 뜻대로 움직여주니. 기억도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잠깐 동안 누린 그것이 어쩌면 평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고 아무도 내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팀장님의 사라진 한 달, 아니 사라진 넉 달은 앞으로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대로 비행기에 몸을 실어 제주도라도 가고 싶게 만드는 김포공항에서, 다음 주면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팀장님의 고단함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서는 길. 서로의 힘든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면서 사는 것밖에 다른 길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