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8_pm11:33
소설가 김연수는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그 무렵 분 단위로 시를 썼다고 한다. 분 단위로 시를 쓰다니. 전설 같기도 한 이 서술이 귀에 박혀서 내내 잊히지 않았다. 시가 술술 나왔던 걸까, 어떻게든 써 보려고 노력한 결과인 걸까. 아무튼 그는 시를 썼고 완성할 때마다 자신의 글 옆에 시간을 적어 넣을 때의 쾌감을 나는 감히 짐작해본다. 분 단위는 아니지만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구구절절 이 글을 쓰고, 그 마지막에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함께 저장하는 기분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시도 아니고, 나는 등단 작가도 아니고, 잠들기 전 꼬박꼬박 쓰는 글이야 초등학생들도 다 쓰는 일기지만. 생각해보니 어릴 땐 억지로 일기를 썼던 것 같다. 다음 날이면 담임 선생님한테 검사를 받아야 했으니까. 신문 사설을 오려 붙이고 그 아래에 사설 내용에 대한 견해를 덧붙이는 숙제도 꽤나 착실하게 했다. 신문도 안 보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하다 보니 스크랩 때문에 나날이 노트가 두꺼워지는 게 뿌듯해서 밑줄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쓰게 되더라. 잦은 이사를 거치면서 그때의 일기장과 노트들을 다 분실한 것이 조금 아깝다. 게 중엔 커버린 내가 그냥 버린 것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도무지 떠오르는 글감이 없어서 노트북 앞에서 고사만 지내고 있었는데, 어쩌면 김연수도 그런 적이 한두 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시가 분 단위로 써진 게 아니라 분 단위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닌지 맞는지 소설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는 밤이지만,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과 의미부여로 나는 이 글을 쓴다. 이제는 더 이상 내 글을 검사하고 평가하는 선생님이 없는데, 그러니 쓰고 싶을 때 자유롭게 쓰고, 쓰기 싫으면 까짓 노트북 따위 덮어버리면 그만인데, 희한하게도 내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강제를 만들어 놓은 기분이다. 전혀 강제적이지 않은 강제라 비실비실하니 힘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제발 나 좀 지켜줘, 나 좀 이끌어 줘, 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일 단위로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