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31_am01:05
야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K를 만났다. 나만 보면 남편 아침밥 차려주고 왔냐고 늘 물어봐주는 사람. 아니오, 제가 더 먼저 출근하는데요. 말해봤자 소용없게 다음날 또 물어본다. 낭군님 아침 차려주고 왔어? 그게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오, 저보다 늦게 출근해요. 그래서 굶겨? 굶기긴 누가 굶겨. 자기 밥 자기가 챙겨 먹는 거지. 그 후로는 K를 마주치는 게 불편해졌다. 그 질문 말고는 저쪽도 내게 달리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도무지 그것 말고는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어제, 이 좋은 봄밤에, 피곤하지만 큰 일 하나를 해치우고 귀가하는 가벼운 퇴근길에 K를 만난 것이다. 강선생은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나 결혼한 거 그새 잊으셨나?) 아뇨. 그럼 애기는 누가 봐줘? (아직 낳지도 않았는데 뭔 소리여) 낳으면 엄마가 봐주겠다고 하시는데 엄마도 연세가 많으셔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지? 예순여섯이요. 아우 그럼 빨리 낳아야겠네. 그 정도면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더 늦으면 힘들어. 애는 결혼하고 바로 낳는 게 좋아. 어영부영 하다보면 나중에 힘들어. 내 주변에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린 사람들이 많아. 나중에 고생해. 나처럼 이제 자식들 다 키우고 애들 자라는 거 보면서 사는 거지. 우리 둘째도 처음에는 나중에 나중에 하더라고. 은행 다니는데 둘째 낳고 엊그저께 복직했어. 둘은 낳아야겠더라. 혼자는 외롭고, 아이들 인성에도 형제가 있는 게 좋아. 사촌네 자식들은 네 살 터울인데 큰 애가 작은 애를 아주 잘 보더라고. 강선생은 이쪽으로 가지? 잘 들어가. 전철마저 같은 방향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며 내 길을 갔다. 질문을 정리하면 K에게 나는 아침마다 남편 밥 차려주고 제때에 아이를 낳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는 꼭 둘이어야 한다. 그럼요, 구첩반상으로 꼬박꼬박 차려주죠. 둘째가 벌써 돌이에요. 라고 말하면 더 이상의 간섭과 질문이 사라질까. 사실 그런 말이야 여기가 아니더라도 자주 듣기 때문에 이젠 놀랍지도 않고 다만 듣기가 싫다. 전철역 입구에서 도를 아십니까에 걸리거나, 일로 알게 된 사람인데 갑자기 다단계 상품을 추천 받는 흔하고 불쾌한 만남처럼 그냥 흘려버리면 되는 관계. 그들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거나, 내 인생을 도울 생각이 없다. 내가 아침에 남편 밥을 챙겨주든 굶기든, 아이를 낳든 아니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들 그러는 걸까. 왜들 안달일까. 나는 그들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최대한 안 만나는 게 좋겠지만 오염된 공기만을 피해서 숨 쉴 수 없으니 그저 그 순간 숨 막히고 답답해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