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1_am01:12
누군가를 몰래 훔쳐본 적, 나도 있다. 몇 해 전 생면부지인 한 여자의 미니홈피를 자주 드나든 까닭은,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의 마음을 흔든 유력한 용의자로 판명되어졌기 때문. 어디까지나 심증이었지만 여자의 직감인지라 무시할 수 없었고, 당시 나는 어떠한 이성적인 판단도 불허할 만큼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그 여자는, 여자인 내가 봐도 상당히 미인이었다. 훌륭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글과 그림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떠한 모습을 보였을 때 자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나처럼 전혀 모르는 인간이 무턱대고 방문했을 경우에도 말이다), 그것을 통해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여 기어이 호감을 얻어 내는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녀의 홈피를 드나들면서 그녀에게 기이할 정도로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듣고 있는 음악을 따라 듣기도 했고, 다녀온 카페를 찾기도 했으며, 그녀가 앉아 있었을 법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좀 무서운가?). 시간이 조금 흘렀고, 어느 날 그녀의 홈피에서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에도 눈이 따갑거나 속이 울렁거리는 등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내 관심은 그보다도 그녀에게 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끔씩 우울할 때마다 그녀의 홈피에 들어가 그녀의 사진을 본다. 글과 그림을 본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나의 어떤 결핍이 채워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2008년 5월에 쓴 글이다. 지금은 모두 비공개로 바꿔 놓은 오래된 블로그 글. 블로그 이전에 미니홈피가 전용 노트이자 사진첩이자 인간관계의 절정이었던 때의 이야기겠다. 이제와 생각하면 우습고도 허무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미니홈피에 내 신변이나 심경을 털어놓기도 하고 일촌들의 미니홈피를 돌아다니면서(이를 파도타기라고 했었다.)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와 사귀는지 등등을 염탐했었지. 나 되게 옛날 사람 같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거야. 아니, 변한 건 사람이겠지. 아무튼 저 글 속에 등장하는 여인을 실제로 봤다는 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저 글을 썼던 무렵에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그녀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고 간 카페였다.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이런 또라이. 지금 생각해도 나 정말 이상한 사람 맞았다. 어떻게 거기 갈 생각을 했을까. 왜 가고 싶었을까. 알은체를 할 것도 아니고 좋아했던 남자와는 한참 전에 끝난 마당에 무슨 이유로. 그날을 잊을 수 없게 한 작은 사건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날 그녀가 서빙을 하다 유리잔을 깨는 바람에 잠시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 그리고 그날 내가 카페에 우산을 두고 가서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 (그녀가 받았다.) 우산을 두고 갔으니 하루만 맡아달라고 한 것. 다음날 찾으러 갈 때도 그녀가 있었다. 당시 내가 일했던 곳이 그곳과 가까웠던 게 비정상적인 나의 행보에 한 몫을 했다. 상수역 근처에서 일했던 나는 퇴근하면 거의 매일 홍대와 합정 근처를 돌아다녔다. 뭔가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빙빙 돌아다녔다. 목적지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발길 닿는 곳이 내가 갈 길이었다. 요즘도 그 길을 종종 지나치는데, 심지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 주변이 하도 급변하는 곳이라선지 그때가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불쑥 예전 블로그를 열어보지 않았다면 그때의 나를 떠올릴 일은 없었을 거다. 벌써 구 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무도 미니홈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듯한데, 스마트폰 때문에 훨씬 더 자유롭게 염탐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늙어서인지 이젠 그저 그렇다. 타인의 삶은 그저 타인의 삶일 뿐. 나 자신의 문제로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 시간도 없다. 이 경지에 조금만 더 일찍 도달했다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지금이라도 안정을 찾아서, 길 잃은 개처럼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안락한 집과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하는 밤이다. 그리고 그녀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것도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