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7_pm06:42
내내 방구석을 빙빙 돌다가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가방 속에는 노트북과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넣고서. “세상이 온통 힘들고 허위이고 악의적이라는 어두운 생각에 빠져 있으면 안 돼. 그럴 때면 우리를 찾아와. 숲은 항상 너를 좋아하니까. 숲과 함께 있으면 기운을 차리고 건강해질 거야. 그래서 다시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될 거야.”(15쪽) 카페에 앉아 이 부분을 두 번 반복해 읽었다. 소리 내 읽지는 못하고 입술만 움직여 읽었다. ‘순독(脣讀)’이라는 말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없다. 내가 처음인가! 하고 다시 제대로 찾아보니 독서의 기술 중 하나로 나오는구나. 아무튼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약간의 입김뿐이더라도 입술을 움직여 읽으면 문장에 주술적인 기운이 담기는 것 같다. 저 문장 자체가 지닌 의미도 한 몫 하겠지만. “한 번이라도 가난하고 고독한 신세를 경험해본 자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타인의 가난과 고독을 더 잘 이해한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15쪽) 이 문장 역시 두 번 읽었다. 가난과 고독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있소! 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 역시 그런 경험들이 과연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 적절히 사용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그동안 내가 겪은 가난과 고독이 그럭저럭 의미가 있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는 것이다. 여전히 가난하지만, 인생의 목적을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둔다면 나는 또 그럭저럭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물론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하며 살 수는 없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엔 이해 못 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어떤 이에게는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이기를. 그래서 저 문장을 한 번 더 읽어본다. 주술적인 기운을 담아 입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