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25. 작가

20170416_am10:24

by 강민선

꿈을 꿨다. 눈을 뜨자마자 이곳에 남긴다. 이 순간에도 금세 잊어버릴 것 같아 손이 바쁘다. 꿈에 김영하 작가가 나왔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나왔지만 이토록 생생한 적은 처음이다. 당연히 방금 꾼 꿈이니까. 헷갈리는 것이 있는데, 배경은 도서관인데 내가 도서관 사서인지 이용자인지 역할이 불분명하다. 어쨌든 우리는 도서관에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였고 인사를 했다. 나는 당연히 김영하 작가를 알았지만 작가가 어떻게 나를 아는지는 모르겠다. 인사를 했는데 반가운 눈치였다. 그 이후는 기억이 사라졌다. 마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하얗게 무너져 있듯 그렇게 사라지는구나, 기억이란. 얼마간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다가, 그냥 가벼운 신변잡담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와 앉은 내 자리가 도서관 열람실 책상처럼 생겨서 내가 직원인지 이용자인지 모르겠다. 내 책상 위에는 실제 도서관에 있는 인형들이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인형들을 내 앞자리에 일렬로 정리했다. 그러다 앞자리에 다른 이용자가 왔기에 얼른 다시 치웠다. 중년의 남자였다. 허름한 옷차림. 까만 얼굴에는 주름. 자리에 앉고는 뒤를 돌아보며 일행을 불렀다. 어이! 여기! 그러자 저쪽에서 여자가 쏜살같이 왔다. 자리를 맡으려는 이용자의 흔한 몸짓으로. 역시 허름한 옷차림. 봉두난발. 가슴에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주 갓난아기. 아기와 일순간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에 앉아 있는 김영하 작가와도 눈을 맞췄다. 이쪽을 보고 있었다. 도서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내 앞자리에 중년의 남자와 여자, 그들의 아이로 보이는 갓난아기, 이렇게 세 명이 앉았다. 여자는 아기의 엄마였다. 나에게 해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아기를 낳을 때 걱정이 많았다. 당장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자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왔다. 여자는 자신을 친절하게 안내했던 도서관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뭔가 사례를 하는 것 같았는데 집에 일찍 퇴근시키는 거였다. 날 위해 고생했으니 일찍 퇴근하게 해달라고 요청. 그리고 자신들이 도서관에 왔을 때 무례하게 대했던 직원에게는 무릎을 꿇게 하고 잘못을 빌게 했다. 그 직원은 꿈에서 처음 봤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비롯해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통쾌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외에도 작고 세세한 배경들이 있었는데 그런 디테일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김영하 작가와 여러 번 눈이 마주쳤다. 이 점이 포인트다.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을까,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과 그냥 내가 쓸까 하는 생각. 어쨌든 지금은 기억이 이 모양이라 나도 제대로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꿈속에선 너무 생생해서, 당연한 말이지만, 이거 빨리 써야지 했었는데. 이 꿈의 핵심은 갓난아기와 부부가 아니라 이 글의 앞부분에 썼듯 김영하 작가가 나왔다는 거다. 김영하 작가는 이 전에도 여러 번 꿈에 나왔었는데 이번이 가장 생생했다. 그야 지금 막 꾼 꿈이기 때문이지만 실제로 이번 꿈에서는 대화를 많이 했다. 꿈 얘기에 실제가 웬 말? 아무튼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했고, 아! 내 머리에 헤어롤을 말아줬다. 평소에 헤어롤 같은 건 말고 다니지도 않는데 웬 헤어롤! 내 머리에 헤어롤을 말아주면서 자신은 눈썹을 그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눈썹이 짙게 그려져 있었다. 왜 그리고 다니냐 했더니 그래야 인상이 뚜렷해 보여서라고 했다. 꿈에서는 웃지 않았다. 물론 나는 김영하 작가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스물셋에 친구네 학교에서 하는 작가 강연에 가서 처음 만났고 이후부터 강의를 하는 곳마다 찾아가서 들었다. 처음 사인을 받은 것은 자리를 옮기기 전 홍대 이리카페에서였던 것 같은데 불확실하다. 그때 사인을 받으려고 이름을 말하는데 작가가 나를 보며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하도 많이 쫓아다녀서요. 아니, 전에도 몇 번 참석해봐서요. 뭐 이런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찾아가지 않았다. 그 이후라면 내가 삼십 대가 되고나서부터인데 그때부터 김영하 작가는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출판사에서도 팍팍 밀어주는 대작가였고 어린 대학생 팬들이 엄청 많아져서 내가 가면 늙은이처럼 보일까 봐 안 갔다. 대신 라디오 방송이나 팟캐스트에 나온다고 하면 귀에 불을 켜고 챙겨 들었다. 신간이 나오면 꼭꼭 사보았다. 그건 변함없었다. 그 사이 나는 도서관에 취직을 했고 결혼도 했다. 그러다가 가장 최근에 실제로 만날 일이 있었는데 바로 김영하 집 앞이었다. 원래는 부산에서 살다가 2015년 9월에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집 앞 산책로였던 개나리공원이 빌라 신축으로 다 파헤쳐진 기막힌 광경을 보고 구청에 민원도 넣고 이웃 사람들의 불만 사항들도 듣고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집 앞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하겠다는 글을 올렸나는 연희동행 버스를 탔다. 그때 보았던 김영하 작가가 가장 최근에 본 모습이다. 이십 대 대학생 시절에 한창 쫓아다녔던 그 모습과 1:1로 비교하지 않는 한 내 눈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평행선을 나란히 가고 있는 두 열차가 상대의 속도를 느끼지 못하듯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도서관에 있어서 좋은 점이 계간지에 실린 그의 신작 단편을 그때그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묶여서 나오는 소설집을 한 번에 읽으려고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던데 난 다르다. 가능한 한 빨리, 첫 번에 쓴 글을 단숨에, 읽고 싶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그곳에 더 많은 게 담겨 있을 거란 생각에. 지금 이 글처럼. 꿈은 이제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 사라졌다. 훗날 이 글을 보면 내가 이런 꿈을 꿨었나 싶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실제로 잘 살고 있을까. 다음 신작을 기대하며 나는 이제 드디어 속초로 떠난다. 정말 속초에 갈 수 있을지는 다음 편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4.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