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24. 나이

20170412_pm09:49

by 강민선

이상하게 우울했다.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아서 그 말의 정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한 마디로 즐겁지 않은 상태, 신나지 않은 상태,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 상태 정도 되겠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더 버티기 힘들 것 같아 노트북을 열었다. 뭐라도 쓰자. 이런 기분이라도 쓰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막 아픈데 열은 나고 몸은 움직일 수 없고 물은 마셔야겠고 기어코 기어가서라도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이건 좀 과장이고 그런 심정으로 글을 쓴다. 만약 내가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었다면 연주를 했을까?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노래했을까? 무용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였을까?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어서, 갖고 있는 것도 이것뿐이어서 한글 파일을 펼쳤다. 요 며칠 계속 이런 것 같은데 대체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방금 결론을 내렸다. 결론을 내리자 도무지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바로 나이 때문이다. 나이라는 게 한 번 먹어버리면 도로 뱉어낼 수도 없고 그냥 계속 먹어버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우울해해야 한다는 얘긴데 사람이 어떻게 그러고 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갑갑하기만 한 것이다. 우울하고 생각이 많아지니 문장도 길어진다. 하지만 다듬지 않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엿가락 늘어뜨리듯 질질 끌겠다. 문장을 넘어 시간과 나이를 엿가락처럼 질질 늘어뜨리기라고 하려는 것처럼. 그래서 늘어날 시간과 나이라면 좋겠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은 늘어질 대로 늘어진 고무줄, 팽팽하고, 언제 툭 끊어질지 몰라 아슬아슬한 외줄. 서른아홉이다. 하고 싶은 것들 때문에 가슴 설레고 마음 벅차다가도 내 나이를 생각하면 확 무너지는 기분이다. 단단하고 차가웠던 얼음이 단숨에 녹아내리는 이미지랄까. 나 언제나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이고 싶은데. 근데 나 한 번도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이었던 적이 없었던 거 같아. 엉엉…… (눈물 닦고) (훌훌 털고) 차차 방법을 찾아보자. 계속 이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아. 할 일이 있을 거야.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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