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26. 여행

20170417_pm09:37

by 강민선

그렇게 가려고 했던 속초에 드디어 다녀왔다. 집에서 가평휴게소까지 한 시간 반, 가평휴게소에서 속초까지 두 시간, 도합 세 시간 반을 달렸다. 내 운전 역사상 가장 긴 주행시간이다. 중간에 한번은 쉬어줘야 한다. 화장실도 가야하고 군것질도 해야 한다. 커피도 마셔줘야 한다. 바깥 공기도 좀 쐬면서 한숨도 돌리고, 어깨 운동도 하고, 천천히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건다’는 표현은 얼마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감각적인가. 시동을 걸 때마다 딱 그런 마음이다. 그리고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동을 건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가 여행의 전부인 것 같다. 막상 속초에 도착해서는 와! 바로 이곳이야!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하는 감탄 따위는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과연 그랬다. 남편은 원래 동해는 싫다고 했었다. 너무 외롭다고. 외로운 게 동해의 매력이라고 대답했던가. 그러면서도 그 매력에 풍덩 빠져버릴 자신이 나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삼척이나 묵호행 버스를 예전에는 혼자서도 잘 올라탔었다. 모르는 길도 무작정 걸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아무 민박집에 들어가 밤새 텔레비전을 돌려 보다 잠이 들었다. 남편과 사귀던 중에도 혼자 속초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원래는 남편도 저녁에 오기로 했었는데 직장 동료가 상을 당했나, 아무튼 그래서 못 왔다. 내가 택시라도 타고 오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택시비 어쩌구 하면서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도 밤새 텔레비전을 돌려 보다 잠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외롭기 그지없던 여행의 추억만 가지고 있을 뿐인데 왜 그리도 속초에 가고 싶어 했을까 싶다. 게다가 내가 직접 본 동해는 언제나 흐렸다. 여행을 다녀온 다른 사람들의 사진에선 그렇게 파랗고 쨍했던 하늘과 바다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다. 지난번엔 속초 가는 길에 비가 와서 되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숙소에 도착하자 비가 왔다. 좀 더 비싼 오션뷰로 정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내내 회색빛이다 마침내 깜깜해져서 무섭게만 느껴졌다. 노트북을 가져갔지만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예 글을 쓰려고도 안 했다.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드는 생각이라곤 여행에 대한 회의 정도랄까. 운전하는 동안 에너지를 다 써버린 걸까. 앞서 말한 대로 속초에 도착한 순간 여행의 체감이 끝나버린 걸까. 기운도 없었다. 텔레비전만 보며 껄껄 웃다가 누워서 뒹굴다가 먹을 것을 주워 먹다가 일찍 잠들었다. 휴가를 길게 낼 수도 없고 고작해야 1박2일 정도이니 짧고 굵게 다녀와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던 걸까. 아니, 이젠 그런 기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이 감정은 실망도 아니다. 뭘까. 역시 그렇군, 역시 아무것도 없군, 뭐 이런 마음인가. 그저 몸이 피곤해서 일까. 날씨 때문일까.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면 기분이 달라졌을까. 영화에서처럼 바닐라 스카이가 막 펼쳐져 준다면. 아, 다음 여행을 기다려야 할까. 매번 이렇게 다음에는 더, 다음에는 더, 하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내내 이런 생각 때문에 집에 온 지금까지도 기분이 별로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아쉬운 걸 거다. 뭘 해도 아쉽고, 안타깝고, 그저 자유로운 시간이 가고 있는 것 자체가 서글픈 것이다. 시간의 판을 뒤집고 싶다. 모든 시간을 내 시간으로, 내가 바라는 일들로 만들고 싶다. 모든 걸 걸기엔 1박2일이 너무 짧다. 그래도 집으로 오면서 보았던,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개었던 하늘은 꽤 멋있었다. 운전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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