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과 부모는 '나'의 일부입니다.
나는 아이를 돌봐주시는 친정 근처에 살고 있다. 그것도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윗집 아랫집에서 살고 있다 보니 가끔은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우리 2층 집에 살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티브이를 보러 할머니 집으로 올라가고(티브이 시청을 줄이기 위해 우리 집은 티브이를 신청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녀와 할머니 집에서 간식 먹고 놀고 있으면, 남편과 내가 퇴근해서 함께 저녁을 먹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하루에도 수십 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누군가 나에게 동거인을 대라고 한다면, 남편과 아이들,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까지 모두 포함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고, 언니네 가족도 수시로 컬래버레이션(?)을 하기 때문에 온 가족의 왕래가 매우 잦은 편이다. 옛날 김수현 작가님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식구인 셈이다. 어쩌다 보니 처가살이 비슷한 걸 하게 된 남편이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있다. 이렇게 매일매일 부모님과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평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아이들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자랐는지를 보여주고, 부모님들은 앞으로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는 인생의 중간 어디 즈음에 와있다. 물론 백세시대에 중간이 왜 거기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으나,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을 낳고 가정도 꾸렸으니 그 이전의 인생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창 직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달리는(?) 시기이다 보니 내가 예전에 어땠는지, 앞으로는 어떨지 잊고 살기가 쉬운데, 부모님과 아이들과 늘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일상에서 나의 과거와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과거는 특히 우리 둘째 딸의 일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호기심도 많고 겁도 없고 식성도 좋다. 물을 많이 먹어서 '물순이', 먹는 걸 좋아해서 '먹순이', 서랍이든 찬장이든 항상 열어보고 뒤지는 걸 좋아해서 '뒤순이'까지 벌써부터 별명이 여러 개이며, 아직 만 두 돌밖에 안됐는데도 넉살이 좋아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나의 미래는 우리 엄마의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다. 둘째 딸의 기질이 나한테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의 이런 기질은 우리 엄마한테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엄마 역시 여전히 호기심도 많아 학구열이 강하시고, 60대의 연세에도 운동이며 등산이며 사교활동도 열심히 하신다. 항상 아침에는 영어공부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손자들과도 친구처럼 잘 지내신다.
인생의 가장 큰 묘미는 '흘러' 간다는 것 아닐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도 변하고 강산도 변한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열 살 때 했었던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내가 예순이 넘을 때는 다시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열 살 때의 나도, 예순이 넘을 때의 나도 나인데 말이다.
가끔은 요즘 사람들이 현실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나의 과거나 나의 미래를 잊고 사는 것 같다고 느낀다. 식당에서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도 한때 그렇게 소란스러웠음을 기억하지 못해서이고(계속 소란스럽게 두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아이들은 아직 식당에서 진정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점 정도는 이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을 쉽게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나도 장차 노인이 될 것임을 예상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만일 나의 과거를 그리고 나의 미래를 지금 주어진 이 현실 속에서 기억하고 예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상황에서 폭넓은 이해심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모님을 가까이 왕래하고, 또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게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를 보여주는 좌표가 되어주는 것이며, 두 좌표를 통해 나는 인생의 순리를 배워나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며, 더 나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버이날인 오늘 아침도,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아이들아~ 부모님~ 함께 해주어서 매우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