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전업맘은 없다.
'육아'만 하는 엄마가 몇이나 되랴..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이다.
우리 민족은 기본적으로 비교와 평가를 좋아한다. 세계 각종 기구에서 발표하는 "세계에서 ~한 나라"순위는 늘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 통해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나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한 방송 또는 동영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그 사람들이 그 민족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닐 텐데, 외국 사람들에 반응에 그렇게 열광하는 걸 보면 우리 국민성 자체가 매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초부터 엄마라는 직위는 하나일 뿐인데, 심지어 이걸 또 굳이 둘로 나눈다. 전업맘과 워킹맘. 그리고 각종 맘 카페 등 모임에서는 전업맘이 힘들다 워킹맘이 힘들다 여기저기서 설왕설래를 나눈다. 동시에 서로 가지지 못한 부분을 부러워한다. 워킹맘 입장에서는 대표적으로 씁쓸한 순간이 나는 일찍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던져놓고 뛰어가는데, 전업맘은 느긋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커피 마시러 가는 그런 순간 아닐까.
하지만 워킹맘과 전업맘의 구분에 대해서 보다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워킹맘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를 의미하고, 전업맘은 육아에만 전념하는 엄마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육아에만 전념하는 엄마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생각했을 때 '직장'에 다니지 않으셨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대의 엄마들은 다 전업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명백히 구분하자면 전업맘이 아니셨던 분이 더 많을 것이다. 일례로 아흔을 훌쩍 넘으신 우리 친할머니는 농사일과 대가족 살림을 하시면서 아이를 여섯이나 낳아 기르셨다. 직장에 나가셨던 건 아니니 당연히 전업맘이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육아에 지쳐 힘들었던 어느 날, 집으로 놀러 오신 친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어떻게 여섯이나 낳아 키우셨어요"라고 여쭈었더니, 할머니는 예상외로 쿨하게 "애를 업고 나가서, 애를 밭에 눕혀놓고 밭일을 했었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직장은 '밭'이었고, 할머니는 애를 업고 나가서 '일'을 하신 워킹맘이셨던 것이다.
또 내가 직접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막상 집에 있어보니, 육아보다는 처리해야 할 가사가 적지 않았다. 항상 출근하던 내가 집에 있으니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집안'을 돌볼 것을 기대하고, 가사도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곤 했다. 그렇게 청소도 좀 하고, 빨래도 좀 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정작 하루 중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육아에 할애했는지, 정말 당시에 육아를 '전업'으로 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가끔은 하루 종일 밤낮 없는 아이랑 집에서 종종거리다 보니 어느새 지쳐 나도 모르게 아직 어린아이를 둘러업고 커피를 사러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전업맘의 그 여유로워 보였던 커피 한잔이 사실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안식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워킹맘으로서, 전업맘을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내가 만들어낸 궤변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전업맘은 없다. 그 어떤 엄마도 항상 아이만 생각하며, 아이를 위한 일만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을 '전업'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집에 있다 보면 가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고, 엄마 자신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도 하다 보면 전업맘도 아이와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더 많은 양의 육아를 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면, 그 시간의 차이는 더욱 좁혀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워킹맘들이 '전업맘'이 존재한다는 환상에 빠져서 스스로를 죄책감에 빠뜨리고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워킹맘도 전업맘도 결국 아이를 낳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사랑으로 그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일 뿐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나에게 매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와 물리적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에 사로잡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흘러 보내지 말자. 직장에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그저 매 순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썩 괜찮은 엄마가 되어 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